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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Feb 11. 2019

‘정확한’ 기억은 없다

<의식의 강>을 읽고

남편이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아, 역시 라임맛 사 오길 잘했어. 라임이 제일 맛있는 거 같애.” “응? 전에는 라임 별로라며, 레몬맛이 제일 낫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자몽맛이 이상하다고 했지.” “응, 그건 그랬는데, 자몽도 이상하고, 라임도 별로고 레몬이 제일 낫다고 하지 않았었어? 그래서 그 이후로 라임은 빼고 쭉 레몬맛만 시켰던 건데.” “잉? 내가 그랬다고? 그랬었나?” “분명 그랬다니까?....아닌가?”

남편도 나도 탄산수를 좋아해서 주기적으로 주문한다. 예전에 여러 가지 맛을 한꺼번에 시키면서 뭐가 맛있다 없다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서로의 기억이 이렇게나 다르다. 예전 같으면 나의 기억력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고로 남편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백 퍼센트 확신했겠으나, 요즘에는 내 기억력도 썩 못 미더워서 말이다. 뭐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사실 사람마다 같은 일을 두고도 미묘하게 기억이 다른 상황은 일상의 모든 분야에 걸쳐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위의 경우는 기껏해야 탄산수의 취향에 관한 이야기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만약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큰 문제가 될 일이다. 가령 집을 사느니 마느니, 투자를 하느니 마느니와 같은 일이었다면. 혹은 어떤 사건을 둘러싸고 증언을 하는 상황이라거나.

그런데 이처럼 사람마다 기억이 다른 것은 누구 한 명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놀랍게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학적인 현상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기억은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들을 바라보는 전반적 태도’와 ‘이미지나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세부 사항’을 기초로 하여 상상력이 가미되어 구성되거나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가장 기초적인 암기와 반복에서조차도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즉 기억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재구성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사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절대적으로 공정하고 정확한 ‘사실’이나 ‘진실’이랄 것이 없는 셈이다. 영화 <라쇼몽>이나 <오, 수정>이 단순히 문학적인 비유가 아니라 ‘팩트’였던 것.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에는 이처럼 인간 기억의 주관성과 한계가 잘 설명되어 있다. 실제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린 시절 길을 잃어버렸던 경험이나 개에게 쫓겼던 경험 등 의도적인 기억을 주입했더니, 실험대상들이 초반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아 그랬었나? 하면서 혼란을 느끼다가, 더 지나서는 주입된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피실험자 대다수가 모든 것이 주입된 기억이라고 밝혀진 이후에도 실험 자체를 부정하며 주입된 기억 쪽을 더 신뢰했다고.

기억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많은데, 예를 들면 ‘표절’ 문제가 그렇다. 몇 년 전 신경숙 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베낀 일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표절을 하고서 모른 척 했던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지금 색스의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최초’의 단계에서는 어쩌면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색스에 의하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무언가를 표절하게 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헬렌 켈러나 마크 트웨인 역시 표절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고(둘 다 어린 시절 다른 이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라고 착각하여 작품으로 옮겼던 경우다), 스스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처럼 기억에 관한 여러 가지 사례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성폭력 문제가 떠올랐다. 성폭력 사건 역시 대개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피해를 주장하는 이 둘 다, 물론 의도적으로 시침을 떼거나, 혹은 정말 악의를 가지고 무고를 하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부분은 모든 것을 말 그대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자신은 명령을 하면서도 구애를 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혹은 본인의 의도적으로 한 어떤 행동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고 상대의 반응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거나.

올리버 색스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집인 <의식의 강>에는 이와 같이 기억이나 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에세이라고는 해도 보다시피 쉽게 풀어쓴 신경학 뇌과학 전공서적에 더 가깝지만. 학술적인 내용과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여 다소 낯설고 어려운 부분이 있음에도 굉장히 친절하고 쉽게 풀어쓴 글이라 과학에 생소한 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총 10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윈과 프로이트의 식물과 동물 연구를 비롯하여 기억과 뇌에 관한 이야기, 모방과 창조, 과학계 전반의 이야기 등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올리버 색스 자신이 투병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도 자세하게 쓰여 있는데, 학자로서 그의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애정에 감탄하게 된다.


⭐️⭐️⭐️⭐️




곤충은 매우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100만 개의 신경세포를 이용하여 비범한 인지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p.87, 지각력-식물과 하등동물의 정신세계



우리는 종종 곤충을 초미니 로봇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작은 몸뚱이 속에 모든 것이 내장되고 프로그래밍되어 있음을 신기하게 여긴다. 그러나 곤충이 매우 풍부하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기억, 학습, 생각, 의사소통을 한다는 증거가 점점 더 많이 축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능력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내장된 것이 많지만, 개체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많다. -p.87, 지각력-식물과 하등동물의 정신세계



진정 나만의 것으로 보이는 열광과 충동 중 상당 부분이 실은 (나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후 잊힌) 타인의 제안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타인’이 나일 수도 있다. -p.120,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기억력 저하 및 오류, 그리고 그것과 감정(특히 무의식적 감정)과의 관련성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일부 환자들이 보인 심각한 기억 왜곡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한 왜곡은 그들이 유년 시절에 성적 유혹이나 학대를 받았노라고 진술할 때 특히 심하게 나타났다. 프로이트는 처음에 환자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나중에는 증거나 타당성이 부족해 보이는 사례를 여러 건 발견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런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판타지가 그들의 회상을 왜곡시킨 게 아닐까? 어떤 판타지는 완전한 허구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무의식적이라도 설득력 있게 구성되면 환자들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환자가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스토리는, 설사 거짓이라고 해도 그들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 경험에서 유래하든 판타지에서 유래하든, 환자들의 심리적 현실은 똑같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었다. -p.129,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세상 사람들은 그를 사기꾼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지만, 면밀한 조사 결과 빌코미르스키는 독자들을 기만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애당초 그 책이 출판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만의 프로젝트에 몰두해왔는데, 그 내용인즉 일곱 살의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데 대한 반작용으로 어린 시절을 낭만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빌코미르스키의 1차적 의도는 판타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적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즈음, 그는 자신이 만든 허구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p.129-130



기억의 많은 부분이 소위 복구된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트라우마가 너무 강한 경험의 기억은 방어적으로 억압되었다가, 후에 치료를 통해 억압에서 벗어남으로써 복구된다. -p.130,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암시를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난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없는데”라고 회의를 품다가, 뒤이어 불확실성에 빠지고, 결국에는 완전한 확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심지어 실험자가 ‘애초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공언한 후에도, 이식된 기억의 진실성을 계속 고집하게 되었다. -p.132,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로프터스가 제시한 사례에서 분명한 것은 “상상 또는 현실 속의 아동학대가 됐든, 진짜 기억 또는 실험적으로 이식된 기억이 됐든, 오도된 증인 또는 세뇌된 죄수가 됐든, 무의식적 표절이 됐든, 오귀속이나 출처 혼동에서 유래하는 거짓 기억이 됐든, 외부의 확인이 없을 경우 ‘진짜 기억(또는 아이디어)으로 느껴지는 것’과 ‘차용되거나 암시된 기억(또는 아이디어)’을 쉽사리 구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도널드 스펜스는 이를 ‘역사적 진실과 서사적 진실 간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p.132,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우리의 정신이나 뇌 속에 기억의 진실성(또는, 최소한 기억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존 여부)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역사적 진실에 직접 접근할 수 없으며, 진실에 대한 느낌이나 주장은 감각과 상상력에 동일하게 의존한다. -p.133,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뇌에 직접 전달하거나 기록할 방법은 없으며, 고도의 주관적 방법으로 여과하여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마다 여과 및 재구성 방법이 다르고, 한 사람을 놓고 보더라도 나중에 회상할 때마다 재여과되고 재해석되기 일쑤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서사적 진실밖에 없고, 우리가 타인이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재범주화되고 다듬어진다. 기억의 본질 속에는 이러한 주관성이 내장되어 있으며, 주관성이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뇌의 토대와 메커니즘에서 유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착오는 비교적 드물고,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굳건하고 신뢰할 만하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p.134,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 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4,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지능, 상상력, 재능, 창의력은 지식과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충분히 조직화되고 집중화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경직되고 형식적이고 내러티브가 결핍된 교육은, 소싯적에 능동적이고 탐구적이었던 어린이의 마음을 해칠 수 있다, 모든 어린이들의 욕구는 하나같이 매우 다양하므로, 교육은 체계와 자율성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p.144, 모방과 창조



줄리어드에서 공부하는 수백 명의 재능 있는 뮤지션 지망생, 또는 유수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총명한 과학자 지망생들 중에서 극소수만이 기념비적인 곡을 쓰거나 과학사에 길이 남을 발견을 하는 이유는 뭘까? 대다수는 상당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2퍼센트의 창조적 불꽃이 부족한 게 아닐까? 어쩌면 창의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창의력 외에 플러스알파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두둑한 배짱, 자신감, 독립심.-p.154, 모방과 창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타인이나 주변의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아이디어는 늘 공중에 떠돌아다니며,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않고 오늘날 유행하는 구절과 언어들을 차용한다. 우리는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 와, 각자 개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해석한다. 우리는 언어를 차용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아니라,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 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p.157, 모방과 창조


우리가 수동적이고 공정한 관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신을 스스로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도했든 말았든, 알았든 몰랐든, 모든 지각과 장면들은 우리 자신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영화의 감독인 동시에 배우다. 모든 프레임과 순간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p.197, 의식의 강


과학과 의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적 경쟁이 벌어진 사례가 수두룩한데, 이러한 경쟁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이례적인 현상이나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와 맞닥뜨리게 한다. -p.221, 암점 - 과학계에 비일비재한 망각과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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