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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Feb 11. 2019

상실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하여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아니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별로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사실 아흔 넘어서 가신 것이니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인 부분이 있었고.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나, 큰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아노 학원에 가서 선생님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당시에도 무언가를, 정확하게는 죽음을 이해하고 그랬던 것 같진 않다. 그냥 어른들이 울어서, 뭔가 슬픈 감정이 복받혀서,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만큼 죽음은 늘 멀리 있는 존재였다. 물론 뉴스에서, TV에서, 페이스북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부고를 접하고, 안타까워하고, 명복을 빌고 하는 일은 있었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어린 시절과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당사자나 나의 주변인이 아닌 이상 무언가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조금 달라졌다. 가까운, 아니 가깝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실제로 아는 누군가가 투병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먼 세계의 존재로만 느껴지던 죽음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두렵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고, 무엇보다 무섭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고작 주변인인 내가 이러한데 당사자의 마음은 어떨까 싶지만. 그렇기에 아무런 말도 보태지 못한 채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는 것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며 눈물을 몇 번을 참았는지 모른다. 저자는 암을 선고받은 뒤 죽음을 대비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투병과정에서의 기록을 남긴다. 애초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글이라 출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으나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한다. 간결하게 적힌 글귀에서 그 고독함이, 두려움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마지막까지도 담대함과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슬펐다. 투병 생활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꽤 자주, 그리고 길게, 선명하게 기록되던 일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리 점차 짧아지고 빈도가 낮아지는 것 또한 슬펐다. 저자는 이 책을 내어놓고,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 사람이 다시 건강해지기를, 힘을 내기를, 아프지 않기를, 행복하기를 바란다. 정말 간절하게.


⭐️⭐️⭐️



눈 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p.16



지금까지 내게 사랑의 본질은 감정의 영역에 국한되었던 건지 모른다.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등의 조용한 감정들..... 그러나 사랑은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정신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정신이고 그럴 때 정신은 행동한다. -p.27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p.29



모든 것이 꿈같다. 그런데 현실이다. 현실이란 깨지 않는 꿈인 걸까. 그사이에 지금 나는 있다. -p.34



살아오면서 늘 정갈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안에 허위의식도 많았겠지만 스스로를 잘 지키려는 자긍심 또한 진실이었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보다 힘센 것은 없다. -p.39



마음이 너무 무거운 건 이미 지나가서 무게도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너무 가벼운 것 또한 아직 오지 않아서 무게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모두가 마음이 제 무게를 잃어서였다. 제 무게를 찾으면 마음은 관대해지고 관대하면 당당해진다. 지나가는 것들을 지나가도록 놓아주고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을 있는 모양대로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것들도 무심하고 담담하게 맞이한다. -p.50



모든 것들이 불확실하다. 그러나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사실만은 확실하다. 모든 것은 마침내 지나간다는 것: “이 놀라운 행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분명한 건 그 행복의 근원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 아니 지금 여기의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p.65



나는 이제껏 지나치게 감정주의자였다. 그래서 대부분 감정이 원하고 시키는대로 행동해왔다. 그러나 행동은 감정의 시녀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이기도 하다. 새로운 감정이 필요할 때 행동이 감정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의 균형이 잡히고 길이 보인다. -p.98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p.103



병은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든다. 환자가 아니었을 때 나는 자주 읽게 되는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야 더 모자라면 어떻고 더 길어지면 또 무슨 대수이냐고만 여겼었다. 그때 유한성의 경계는 멀고 시간은 다만 추상적 길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게 시간은 더는 추상적 길이가 아니다. 그건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질량이고 무게이고 깊이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이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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