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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Feb 13. 2019

구남친으로서의 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를 읽고

작년에 라디오를 듣는 중에 파리의 공동묘지에 묻힌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유명인이 많이 묻혀서 워낙에도 방문객이 많은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오스카 와일드의 묘소는 하도 찾는 사람이 많아 유리창으로 막아놨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묘비에 온갖 립스틱 자국과 무덤에 바쳐지는 꽃송이들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고. 심지어 유리로 덮어놓은 지금까지도 그 위로 키스자국을 남기고 가는 이들이 있다고.  


아니 새똥이 묻어있을 수도 있고, 벌레가 기어 다녔을 수도 있고, 그전에 취객이 오줌을 쌌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전에 누가 입을 댔는지 알 수 없고, 아무리 오스카 와일드가 좋아도 그렇지 묘비에 입을 맞췄다고? 윽....하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듣고 있다가, 그런데 만약 그게 백석이었다면?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급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석이오빠..... 아니 이게 주제가 아니고.


하여간 당시에는 솔직히 사람들이 왜 그토록 오스카 와일드를 좋아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훌륭한 작품을 여럿 남긴 뛰어난 작가로서 불행한 말로를 맞이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동성애 혐의로 투옥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즉 소수자성으로 부당한 고통을 당했기에 연민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런 작가는 동서고금 차고 넘치지 않는가 하면서. 그때부터 무엇이 오스카 와일드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많은 예술가들이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지만, 사실 오스카 와일드는 생애 자체가 정말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바닥 깊은 곳으로의 추락, 모든 이의 선망을 받는 인기인에서 멸시를 당하고 무시받는 조롱거리로 전락, 그러고보니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플롯이기도 하다. 앙드레 지드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 자체는 그렇게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삶 자체가 예술이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남겼는데,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아일랜드 출신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는 스스로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뛰어난 역량을 펼치며 어린 나이부터 명성을 날리게 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도 본인에 대한 확신이 없어 괴로워하며 생전에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그처럼 뛰어난 지성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나날이 명성이 높아가던 와일드의 인생은 어느 날 더글러스를 만나면서부터 흔들리는데...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더글러스는 본래부터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읽고 그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만남을 갖게 되었고, 오스카 와일드는 빼어난 용모를 가진 더글러스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후로 두 사람은 격정적이고 파괴적인(말하자면 싸우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고 하는 징글징글한) 사랑을 하지만, 사실 그 사랑 자체만으로 파멸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더글러스의 아버지가 상당히 권위적인 사람으로 두 부자 사이가 엄청나게 험악했더란 것.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휘어잡을 목적으로,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할 목적으로 오스카 와일드를 이용하게 된 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  


더글러스의 아버지는 아들과 헤어지라는 이야기에도 꼼짝하지 않자,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라고 쓴 쪽지를 술집에 붙인다. 이에 격분한 와일드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다. 여기에는 아버지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더글러스의 의견도 한몫했고. 그러나 친구들이 현명했던 것이, 이는 사실 오스카 와일드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행동이었다.


말하자면 동성애자인 오스카 와일드가 법정에서 스스로가 동성애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것인데, 평소에도 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다니던 그였기에 불리한 증거가 오히려 차고 넘쳤던 것이다. 결국 오스카 와일드는 2년의 노역형을 선고받고 투옥된다. 뿐만 아니라 더글러스의 아버지에게 재판 비용 및 벌금 등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한다.  


사실 당시에는 동성애가 불법이라는 것이 실정법상 거의 무효화된 조항이었다. 그전까지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많은 예술가들이 동성애자였던 것도 그렇고. 다만 그것을 재판이라는 공식적인 절차로 가지고 오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당시 총리 역시 동성애자라는 스캔들(심지어 상대는 더글러스의 자살한 큰 형)이 있었는데 이를 덮기 위한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하여간 감옥에 간 오스카 와일드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자신을 끝없이 자책하는 한편, 이러한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더글러스를 원망하는 편지를 남긴다. 그것이 바로 <심연으로부터>이다. 옥중서한, 그것도 놀라운 문학적 재능을 지녔던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편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치 그럴듯한 진실과 삶의 비밀이 담겨 있을 듯 하지만 직접 읽어보면 놀랍게도 흔한 ‘구남친’ 1인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로 더글러스가 얼마나 사치스럽고, 사악하고, 판단력이 없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는지에 대한 비난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나는 지금은 당신과의 우정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해. 단지 그 우정이 지속되는 동안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만 생각하고 있어. 그건 내게 지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었지. 당신은 기본적으로 아직 미성숙 단계에 있는 예술적 기질을 지니고 있었어.”

>> 이렇게 잘난 내가 깜도 안 되는 너 같은 걸 만나서 신세를 망쳤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당신은 내 예술에 절대적인 재앙으로 작용했지. 그리고 난 당신한테 예술과 나 자신 사이에 끈질기게 자리하도록 허용한 것을 더없이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끝없이 나를 자책하고 있어. 당신은 알지도 못했고, 이해할 수도 없었으며, 제대로 평가할 줄도 몰랐지. 나한테는 당신에게서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기대할 권리가 없었던 거야. 당신은 오직 근사한 식사와 당신 기분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당신은 그저 즐기는 것과, 평범하거나 그보다 저급한 쾌락만을 원했어.”

>> 넌 취향도 나쁘고 나와 수준도 맞지 않고!!! 더 나쁜 건 나한테 관심도 없었지!!! 내 돈으로 맨날 비싼 밥처먹는데만 관심이 있었지! 넌 이기주의자야!!! 너 같은 걸 사랑한 내가 등신이다....


“당신과 일생을 보내는 것보다 예술과 30분을 같이 보내는 게 내게는 언제나 더 유익했어.”

>> 너랑 보낼 시간에 글을 썼더라면!!!  


“내 기억에 가장 즐거웠던 저녁식사 중 하나는 로비하고 소호의 조그만 카페에서 함께 했던 것이었는데, 당신하고 식사할 때 썼던 돈에서 파운드를 실링으로 바꾼 만큼의 비용밖에 들지 않았지.”

>> 로비는 너 같은 사치스러운 인간과는 다르다고! 얼마나 검소하고 소박한지 아느냐!!  


“나처럼 끔찍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하나의 수치와 또 다른 수치를 구분한다는 게 당신한테는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은, 어리석게도 그 많은 돈을 당신에게 낭비하고, 당신이 당신과 나의 불행을 위해 내 재산을 탕진하게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나의 파산에 통속적인 바탕의 색채를 부여하면서 내게 두 배의 수치심을 안겨준다는 거야. 나는 다른 것들을 위해 생겨난 사람이기 때문이지.”

>>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너 따위를 만나서 그 많은 돈을 쓰고 이런 굴욕을 당하고.


“난 종종 지루해 죽을 것만 같았고,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당신과 어울리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비싼 대가의 일부로,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지.”

>> 너 얘기 노잼인데 네가 좋아서 할 수 없이 재밌는 척하며 들어줬었다고!!!


물론 오스카 와일드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러한 모든 비난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대한 직접적 토로 대신 이제 와서 너 정말 머리도 나쁘고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었다는 인신공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말하자면 더글러스가 멍청한 병(감기)에 걸렸고 오스카 와일드는 병든 그를 성심 성의껏 돌봐주었던 일이 있었는데, 심지어 포도를 사다 줬는데 맛이 없다고 하여 저어기 어디 멀리서 새로 공수해다 먹여주기까지 하며 간병을 해주었는데, 그만 오스카 와일드 본인도 감기에 옮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앓아누웠는데 그런 나를 본 척도 안 하고, 물 한잔 가져다 달란 부탁을 거절하고 넌 놀러 나갈 준비만 하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비난하는 쪽지를 남겼더니 그걸 두고 자기가 나를 하루 종일 돌보고 있어야 하냐고 화를 냈지! 하면서 과거의 모든 울분을 회상하여 전부 다 쏟아놓는 식이다.


읽다 보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알겠다. 다만 왜 그런 사람과 헤어지지 않고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며 계속 고통을 받았냐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오스카 와일드는 헤어져도 더글러스가 자꾸 찾아와서 매달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과연.... 심지어 편지의 마지막은 이러한 모든 비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잘 알아야만 하고, 너는 나에게 좀 더 편지를 써야만 하고,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해야만 한다는 걸로 끝나는 것까지 너무나 구남친스러운 것.


사실 위에 편지에서도 언급된 로비(로버트)는 오스카 와일드의 옛 연인이자 오랜 친구로 그가 그 모든 고초를 겪는 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킨 인물이다. 로비는 오스카 와일드를 돌봐주고, 그를 정서적으로 보듬어주며, 심지어 와일드 사후에는 그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묏자리를 사서 그의 묘를 돌보고, 자신의 사후에는 오스카 와일드와 같이 묻어달라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말로는 가장 믿음직한 친구라고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평생의 사랑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닌가. 누가 친구랑 같이 묻어달라고 하냐고요. 하여간 그처럼 고상하고, 사려 깊고, 다정하고, 소박하며, 헌신적인 이를 두고 오스카 와일드가 그토록 비난하고 미워하는 상대에게 계속 돌아가고 또 돌아갔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실 오스카 와일드를 사랑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더글러스가 너무나 무개념에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더글러스가 아닌 다른 이를 대하는 오스카 와일드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 부분이다. 앙드레 지드는 오스카 와일드를 처음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남긴다. “와일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과시용 가면을 쓰고 그들을 감탄하게 하거나 즐겁게 하거나 때로는 그들의 짜증을 돋우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결코 듣는 법이 없었고, 자기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홀로 빛나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우리끼리 단둘만 있게 되면 비로소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심지어는 무일푼이 된 상태에서도 호텔 방을 두 개 빌려 하나는 작업실 하나는 침실로 꾸며놓고 쓸 정도로 사치를 즐기기도 했었다. 결국, 더글러스와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오스카 와일드가 더글러스를 만나서 그토록 끔찍하고 괴이한 사랑에 이른 것도,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것도 실은 그의 오만한 성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스카 와일드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당신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당신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을 거야. 당신은 내가 당신한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그건 당신이 자주 늘어놓는 자랑거리 중 하나였고, 사실상 근거가 있는 유일한 것이었지. 정확히 당신의 어떤 것에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당신 머리? 그건 발달이 덜 되었지. 당신 상상력? 그건 죽어버렸지. 당신 마음? 그건 아직 생겨나지도 않았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번이라도 마주쳤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당신은 정말이지 유일한 사람이었어. 어떤 면에서건 내가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었던 단 한 사람이었어.”  나를 이렇게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


결국은 너무나도 오만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처럼 자신을 향해 전전긍긍하지 않는 더글러스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더글러스의 입장 또한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마음 깊이 나의 지성과, 상상력과, 마음을 멸시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둘은 서로에 대한 집착과 마음 깊은 증오가 뒤얽힌 비뚤어진 관계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오스카 와일드는 결국 출소 이후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글러스와 다시 만난다. 자신을 파멸시켰기 때문에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남기면서.  


이처럼 한 명의 흔한 구남친에 지나지 않는 오스카 와일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많은 팬들이 오스카 와일드를 추억하며 남겼던 이야기들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의에 항거하며 살다 비운에 간 천재, 마음이 선량하고 너그러웠던 사람,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웠던 사람, 등의 수식어는 너무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본질을 흐리는 잘못된 환상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부분들도 오스카 와일드의 ‘일부’일 수는 있겠으나 그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으며, 무엇보다 오스카 와일드 본인이 썩 기뻐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와일드는 더글러스를 향한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에 언젠가 나와 아주 가까운 친구 - 1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 - 가 나를 보러 와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자기는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나쁜 말들을 한마디도 믿지 않으며, 나를 완전히 결백한 사람으로, 당신 아버지가 꾸민 비열한 흉계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내가 알기를 바란다고 말이지. 나는 그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어. 당신 아버지의 결정적인 비난 가운데는 거짓된 것들과 역겨운 적의에 의해 내게 전가된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내 삶이 비뚤어진 쾌락들과 기이한 열정들로 가득했던 것 또한 사실이라고. 그러니 그가 그 사실을 나에 관한 기지의 사실로 받아들고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이상 그의 친구가 될 수 없고, 그와 어울릴 수도 없다고 말했지.”


말하자면 단점까지, 모자란 부분까지 포함된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받고 싶단 뜻인데, 그의 인간적 약점들은 <심연으로부터>에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오만함, 나약함, 찌질함, 비겁함. 다만 그의 바램처럼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 그를 더 사랑하게 될 지 모른다. 삶이 그러하니까. 많은 경우 사랑도 그러하니까. 예술도 실은 그러하니까.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리고, 나를 망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  


감옥 생활을 경험한 오스카 와일드는, 육체노동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출소한 뒤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사망한다.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다시 창작에의 열의를 불태우고, 자신이 겸손해지기를, 지금의 고통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던 그였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출소 이후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다. 실제의 삶에서는 문학이나 영화와 다르게 재기란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그를 기억하고 기리고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좌절과 비참한 말로와 불행과 고통이 더욱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


오스카 와일드와 더글러스
오스카 와일드의 평생의 연인이었던 엘프리드 더글러스
오스카 와일드의 옛 연인이자 친구인 로버트 로스



B(더글러스)는 내게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정말 터무니없는 얘깁니다. 그는 지루한 걸 절대 참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건 내가 잘 알지요. 그는 매일같이 내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가 먼저 극의 집필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그는 내게 돌아올 겁니다. 그는 혼자 있을 때는 제대로 된 작품을 쓴 적이 없습니다. 항상 기분 전환거리가 필요했지요. 그의 뛰어난 작품들은 모두 나와 함께 있을 때 쓴 것입니다. 여기 그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편지를 보시면.....” B는 내게 편지를 보여주며 읽어내려갔다. 편지에서 와일드는 B에게 자신이 <파라오>를 차분히 끝낼 수 있게 해줄 것을 간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B의 말대로, 극의 집필을 끝내는 즉시 그를 만나러 오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근사한 문장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그럼 나는 또다시 인생의 왕이 될 수 있을 거야.” -p.277,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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