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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08. 2018

한국소설이 안 팔리는 이유는?

당선 합격 계급을 읽고

한국인은 전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2016년 기준) 동시에, 책을 가장 안 읽는(2015년 기준 166위/192개국) 사람들이라 한다. 물론 특정 집단(이를테면 페이스북에 긴 글을 쓰는 사람들) 내에는 여전히 경쟁적으로 서평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렇게 다독을 하는 사람 중에도 소설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소설 중에서도 한국소설을 읽는 사람은?

나는 대한민국 평균 대비 비교적 책을, 그 중에서도 소설을 상당히 많이 읽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더구나 지식의 축적보다도 순전히 유희를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나 역시도 한국 소설을 읽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아주 요란하게 화제가 되거나, 특정한 계기로 팬이 되어 지속적으로 찾아보거나, 신뢰할만한 사람이 강력 추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선.

그렇다면 한국소설은 왜 선택을 받지 못하는가.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을 통해 문학공모전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그를 통해 출판계가 돌아가는 구조를 상세히 보여준다. 읽다보면, 아 그래서 재미있는 한국소설을 찾아내기가 그토록 어려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은 ‘과거시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일률적으로 치르는 큰 시험, 그를 통해 부여되는 어떤 막강한 권위, 그리고 권위를 획득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과 박탈감. 우리 사회 대부분이 이러한 구조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 그만큼 시험의 권위는 크며, 진입장벽은 높고, 통과가 어려운 만큼 열매는 달콤하며,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오랜시간 기약없이 매달리기도 한다. 대입 수능부터 대기업 공채, 각종 자격 시험,  얼마 전까지 있었던 (지금은 폐지되어 로스쿨로 대체되었지만) 사법시험에 이르기까지. 문학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험들과 마찬가지로 문학계를 성공시키고 견인해온 문학상이 지금은 오히려 문학계를 망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모든 시험제도를 없애야 한다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수능과 공채 제도에는 그것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며, 문학상에도 분명 장점이 있다. 다만 한계와 단점 또한 명확하다.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문제점을 보강하고 모두가 이로운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환기한다.

기본적으로는 소설을 좋아하고 문학공모전 등단이나 장래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 및 출판업 종사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서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나 고민해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 책에 상세히 나오지만 결국 모든 제도가 시작되고 이어지는 배경에는 정보의 불균형이 있다. 한국소설, 더 나아가서 한국 출판 시장 역시 마찬가지라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모르니 공모전 당선작이나 특정한 화제작 위주로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그렇게 화제가 된 작품인데 막상 읽어보니 별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책을 안 읽고 읽는 사람이 없으니 쓰는 사람도 없고...얼마 안남은 쓰는 이들은 유일하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공모전이니 공모전에만 매달리고 그러다보면 당선작 외 다른 작품은 전부 묻혀지고. 결국 무한 반복.

사회 구조를 보강하는 것과는 별개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많이 읽고 써야 한다. 특히나 솔직한 서평을 쓰는 독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 역시 책이 별로인 경우 후기를 안 쓰면 안썼지 신랄하게 비평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앞으로 노잼인 책은 좀 더 강력하게 노잼이라고 이야기하기로. 물론 이 책은 꿀잼입니다.

“저는 세상에 ‘읽고 쓰는 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아마 다 그 공동체의 일원일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더 끈끈하게 묶여있다고 생각해요. 고향 사람이라든가, 어느 대학 동문이라든가 하는 것보다 더. 그리고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입니다. (중략) 그런데 이 공동체가 지금 점점 규모가 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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