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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08. 2018

강간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라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읽고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읽었다.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강간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 어떤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오랜 기간 강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왔다. 초등학생 때 하교길에 골목길에서 따라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어두운 밤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던, 비오는 대낮에 나를 바라보며 자위 행위를 하는 그 남자를 조용히 피해가던, 늦은 밤 택시를 타고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졸이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그 모든 공포의 근원은 강간이었다.

강간은 신체적인 상해와 정신적인 모욕을 동시에 가할 수 있는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며, 공격을 하는 동시에 타인의 섹슈얼리티를 취할 수 있는, 즉 징벌과 약탈을 함께 행할 수 있는 수단이다. 폭력과 갈등의 상황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되며 포털이나 SNS 등지에서도 미워하는 누군가를 저주하고자 할 때 ‘강간당하라’고 하는 것 또한 이러한(신체적인 상해와 정신적인 모욕을 동시에 가하고 싶다는) 욕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강간은 단순한 성욕이 아닌 권력과 힘을 발휘하고 싶다는, 상대에게 징벌을 가하고 모욕을 주는 동시에 물리적인 이득을 취하고 싶은 욕구로 인하여 발생한다. 그러나 강간이 성욕 때문에 일어난다는 믿음이 깨진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강간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거나, 남녀상열지사, 즉 단순한 아랫도리 송사로 치부하거나, 전쟁이나 폭동 등 인간성이 말살되는 상황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다른 ‘일상적인 약탈행위’와 다를 바 없이 취급한다. 심지어 이전까지는 강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고루하고 구태한 인상을 주었다. 운동권이나 거대 담론을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마차가지였다. 강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체제에 반동하고 담론을 흐리는 행위이다. 성엄숙주의를 공격하는 목소리가 유난히 강하게 나오는 세력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보면 오늘날 역시 과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여성의 역사가 강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믿으며 강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간다. 태초에 강간이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원을 통제하였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의 행태는 어떠하였는지. 고대, 1,2차 세계대전, 남북전쟁, 한국 전쟁 및 콩고 내전 등 전시의 상황을 비롯하여, 인종간, 권력간, 동성간 등 강간을 세분화하여 폭넓게 다룬다. 강간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실상 섹슈얼리티와 폭력의 역사이다.

그만큼 남성과 여성, 인종간, 계급간의 대립에 있어서 강간은 빠질 수 없는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서 강간을 폭력의 문제로 치환하여 바라보기 전까지는 아예 무시되어거나 선전과 선동을 위한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차용되었다. 이를테면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강간한 경우는 인종 간 대립과 백인의 흑인에 대한 압제를 설명하는 사례로서 인용되지만, 흑인 여성이 같은 흑인 남성에게 혹은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여성의 히스테리, 무고, 체제 및 인권운동을 방해하는 공작으로 치부되었다.

베트남 전 당시에 반전운동 관련 시위에서 ‘전쟁 중 강간을 멈추라’고 외치는 것은 담론을 흐린다는 공격을 받았으며,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강간을 당하면 자본주의의 억압이기에 항거해야 하지만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강간을 당하면 마땅한 댓가를 치른 것이 되었다. 강간 사건은 늘 여러가지 측면에서 ‘오염’되기 일쑤였으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거나 이에 항거하기 위한 근거로만 이용되었다.

책에서는 태초에 여성이 불특정 다수에게 강간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한 남성에게 보호를 의탁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가 창시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실상 미국 교도소에서 동성간 강간 사태를 조사한 결과 많은 동성 강간 피해자가 다수의 남성에게 윤간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특정 남성과 규칙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보았을 때 이는 상당히 근거가 높은 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에게 보호를 의탁하면서 그의 ‘소유물’이 되었고, 여성을 가축이나 가구와 같은 재산으로 취급하는 시각이 이러한 모든 강간문화의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태초에 그렇게 시작된 강간은 전쟁 및 계급간의 다툼, 매스미디어 등을 거쳐 더욱 강하고 뿌리깊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공포-강간 당하고 싶지 않다-로서 여성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좋은 책이고, 모든 이에게 권유하고 싶지만, 책을 읽고 난 현재 나의 마음은 한편 매우 암울하다. 반복되어 온 역사 및 각종 사례를 접하다보면 애초에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구조와 힘의 차이에서 이 모든 것이 비롯되었으며, 그러한 차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어떠한 돌발상황이나 위급상황에서는 다시금 끔찍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사법제도 및 인식의 개선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을런지 모르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문명이 파괴되는 순간에는 당연히 강간이 따라올 것이기에. 그러한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모든 문제 이전에 여성 해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성해방이 이루어지는 날은 아마 모든 여성이 강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일 것이다. 강간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날. 강간이 재정의 되는 날. 책의 서문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친다. “여성의 입장에서 강간을 정의하면 한 문장으로 가능하다. 한 여성이 어떤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기로 선택했는데 남자가 그녀의 의사에 반해 행위를 계속하면 그것이 바로 강간이라는 범죄 행위이다. 여성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 문제인데도, 여성의 관점을 반영한 이런 정의가 법에 적용된 적은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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