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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11. 2019

단 하나의 추억

영화 <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 머무르는 ‘림보’라는 공간이 배경이다. 말하자면 일본판 ‘신과 함께’인 셈. 그러나 림보의 세계는 현실과 완전히 같다. 사람들의 모습도 그대로고, 일상이 똑같이 이루어지며, 그저 살아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별개의 공간에 그들끼리 존재한다는 점 정도만이 다르다. 마치 교육을 들으러 어디 산골짜기 수련원에 모여있는 것처럼.

따라서 여기에선 어떠한 심판도 속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죽은 사람들은 이곳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하나씩 골라야만 한다. 각자가 선택한 추억은 면접관들이 영상으로 재현해 마지막 날 상영을 해주고, 죽은 사람들은 해당 영상에 나온 순간만을 간직한 채로 저승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다 보면 사람들의 인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유원지에서 놀이기구를 탔던 기억을 꼽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여관에서 보낸 하룻밤을 선택하는 이도 있다. 한편으로, 5살 무렵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오빠 앞에서 춤을 췄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할머니가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고분고분하게 지시를 따르는 것 역시 아니다. 대놓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반항을 해버리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뭔가 ‘의미 있는’ 추억을 선택하기 위해 마감 직전까지 모두를 애먹이는 할아버지도 있다.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답한다.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서요.”

그러나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될만한 ‘이렇다 할’ 기억은 딱히 떠오르지 않고,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면접관들은 그의 70여 년간의 인생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져다준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이 담긴 비디오를 하나하나 돌려본다. 10대 시절의 그는 친구들과 좁은 방 안에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소리치고 있었다.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설거지가 다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만약 지금 당장 죽어서 림보에 넘어가게 되면 무슨 기억을 선택할까. 나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억, 내 인생에서의 가장 행복한 추억은 뭘까. 다른 모든 기억과 바꿔도 좋을만한 단 한순간,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

뭔가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영화를 보다 말고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였다. 한참 동안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을 들여다봤다. 아유, 이때 다 컸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완전 애기네. 맞아, 이때 정말 귀여웠었어. 우스운 것은 그 사진이 찍히던 당시에는 더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며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내년이나 내후년쯤 지금의 사진을 보면서 또 같은 감정을 느끼리란 것이다. 지금 당장은 절대 실감할 수 없는 그 감정. 오로지 지나고 난 뒤에만 느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현재를 오롯이 즐기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추억에 젖어드는 것은 현재를 즐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 지나간 것은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일이라 설레는 것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지나간 뒤 아름다워 보이는 대부분의 추억이 막상 그 당시에는 그저 평이하고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영화의 막바지까지 과거의 인생을 샅샅이 돌아보며 고민하던 할아버지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선택한 것은 아내와 여름날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길에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었다. “당신 결혼 전에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언제 그랬어!” “분명 그랬었다고요.” “쳇, 지어내지 마.” “흥, 또 저런다 또 저래.” “알았어, 알았다고. 기억은 안 나지만, 하여간,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둘이서 꼭 영화를 보자고.” 할아버지는 면접관에게 말한다. “정말 대단치 않은 일이기는 한데요..... 그래도 그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어떤 강렬한 순간적인 감정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언젠가 모두 휘발되고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종종 허무해지기도 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고.

그러나 동시에 모든 일은 어떠한 형태로든 추억을 남긴다는 것 또한 안다. 추억이란, 오랜 시간이 흘러 모든 감정이 휘발된 이후라 할지라도, 어떤 반짝거리는 빛이 되어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해준다. 마치 책갈피에 끼워둔 꽃의 향기가 날아가고 색이 바래도 어느 형태가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상 현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과거의 어떤 순간들일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반짝거리는 눈빛, 볼의 홍조, 입가의 미소를 보면서 보는 내내 덩달아 행복했던 영화이다. 끝난 뒤 영화를 한 편 본 게 아니라 마치 나의 인생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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