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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17. 2019

여자가 남자보다 질투가 더 심할까?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친구를 배신하라>라는 수필에는 겉으로는 칭찬을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 멋진 옷이네요. 어디서 맞춘 거예요?”
“N이라는 가게에서요. 옷은 괜찮은데 내 스타일이 시원찮아서 말이죠. 당신이라면 훨씬 더 멋있게 입을 수 있을 텐데.”
“무슨 말씀이세요. 다리가 얼마나 늘씬하신데. 당치도 않아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여성들이 속으로는 서로를 굉장히 미워하고 있고, 또 상대를 헐뜯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물으면 우선 이렇게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
“아아, S 씨요? 그분은 내 오랜 친구예요. 참 좋은 분이죠.”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깔깔 웃고 말았는데, 내용이 정말 알맞고 구구절절 동의해서라기보다는, 저자가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 너무도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이 재미있어서였다. 물론 우익으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인 데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별 기대는 없었지만. 사실 그의 평소 행태를 생각하면 저런 생각을 하는 쪽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오늘날에 저 대목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저게 왜? 맞는 말이잖아?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오랫동안 진리처럼 통용되어 왔으며 시기심과 질투는 여성성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나 역시 실제로 저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여성들을 알고 있기도 하다.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칭찬하지만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있는 이들. 그러나 저러한 시기심과 비틀린 마음이 과연 여성만의 문제일까?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실제로도 여성이 남성보다 시기심과 질투가 강한 것일까?
 
신현호의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의 5장 “네가 고통받을 때, 나는 쌤통을 느낀다”에는 샤덴프로이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샤덴프로이데는 질투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개념으로, 질투가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느끼는 불행감이라면 샤덴프로이데는 타인의 고통을 보며 느끼는 쾌락을 의미한다. 일명 쌤통 심리. 예를 들면 작년의 월드컵에서 독일이 한국에 2-0으로 패배했을 때 자기 일도 아니면서 뛸 듯이 기뻐했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대표적인 샤덴프로이데로 경기 직후 대부분의 유럽 언론은 일제히 독일이 패배한 사실을 매우 고소해하며 조롱하는 기사를 내고, 많은 외국인들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한국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샤덴프로이데는 열등감이 강할수록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위의 사례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독일의 패배를 자기 일처럼 뛸 듯이 기뻐하며 고소해했던 것 역시 그간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각종 열등감과 오랜 원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이 아닐는지.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정도의 샤덴프로이데는 인간으로서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여성이 남성보다 시기심과 질투가 강한 것일까? 이와 관련된 꽤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보통 취업을 한 사람은 주변에 실업자가 늘어날수록 행복도가 낮아지는데 반하여, 실업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실업률이 높아지면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말하자면 본인이 행복한 상태에서는 타인의 불행을 그다지 바라지 않지만 불행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열등감이 위와 같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이웃과 교류가 있는 사람에게서는 샤덴프로이데가 나타나지만 교류가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교류의 상태에 있는 것이 샤덴프로이데를 자극한다고. 아예 관심도 없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잘되든 말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상대를 인지하게 되고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해진다. 마치 SNS를 열심히 하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는 것과도 같이.
 
아주 재미있는 것은 이웃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실업자들의 샤덴프로이데를 성별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인데, 흥미롭게도 남성은 본인이 실업상태일 때 이웃의 실업률이 올라가면 샤덴프로이데를 보이지만(기뻐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본인이 실업 상태에 있으면서 이웃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웃에 실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행복도가 더 낮아졌다고 한다. 여성 쪽이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고 공감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흔히 여성이 질투와 샤덴프로이데가 더 강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인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미시마 유키오의 예시는 사실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우와,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세요? 역시 갓갓김선생님!”

“껄껄, 저 따위가 뭘요. 이 선생님 쪽이 훨씬 훌륭하시죠. 전 아직 멀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김 선생님을 제가 따라갈 수나 있겠습니까.”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남성들이 속으로는 서로를 굉장히 미워하고 있고, 또 상대를 헐뜯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물으면 우선 이렇게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

“아아, M씨요? 그분은 저랑 아주 오래된 사이예요. 좋은 분이죠.”
 
신현호의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는 이와 같이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근거 없는 소문이나 편견을 ‘팩트’를 들어맞는지 아닌지를 그야말로 하나하나 뜯어보고 분석한다. 수치와 도표가 많이 등장하는 서적이라 어렵거나 지루할 것 같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데이터에 관한 책이지만 실생활과 밀접하며 누가 들어도 흥미 있을만한 이야기를 사례별로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로또 명당이란 것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월드컵 기간에는 주식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초콜릿을 많이 먹는 사람이 노벨상을 탄다는 것이 진실인지, 인도 국민이 왜 무슬림 국가보다 경제력이 높은데도 수명이 짧은지, 딸이 있는 아빠는 아들만 있는 아빠에 비해 젠더 의식이 개선될 여지가 높은지,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벌면 이혼율이 정말로 높아지는지 등등 말이다.


흥미로운 목차


 
모든 사례가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 앞서 언급한 샤덴프로이데 관련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읽지 않더라도 집에 책을 쌓아놓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대목이 매우 재미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책에 노출되는 것은 인지능력 발달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집에 책이 많았던 아이들과 없었던 아이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사실 적극적으로 책을 찾아 읽지 않더라도 주변에 있으면 자연스레 펴보기라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 고로 집에 책이 많을수록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계기는 몇 달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한 포스팅 때문이었는데, 지방의 인프라를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나라의 지방은 이미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었다는 모 정당의 대표가 했던 말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였다. 그때 비판의 근거로 지난겨울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던 경험과 현재 대전에 거주하면서 느꼈던 지점을 비교했는데 누군가 나서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일본도 교통은 엉망이고 후쿠오카와 굳이 비교하자면 대전이 훨씬 낫다고 하여 설전을 좀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창 댓글로 다투고 있는데 중간에 어느 분이 혜성처럼 등장해서는 일본과 한국의 1인당 도로 길이를 수치로 들며, 수치로 봐도 이렇게 한국의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국의 인프라가 문제없다고 주장하던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그때 그야말로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내가 개인의 경험, 그야말로 ‘감’에 의존하여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이처럼 정확한 데이터로 근거를 들 수가 있구나. 아무리 경험과 느낌에 의존하여 호소한들, 정확한 데이터 값이 더 중요한 부분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문제는 데이터를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일단 어떤 데이터를 찾아보아야 할지,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지만. 그처럼 데이터를 읽고 활용하는 법을 알고 싶어서 ‘공부’의 목적으로 어떤 각오까지 하고 집어 들었던 책이었는데 사례 중심으로 풀어내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수치와 데이터에 능해지고 사고방식이 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남편에게 “그러고 보니 4월에 참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난 것 같지 않아?(본인이 4월생임)”라고 말하자 남편이 “아니 어떻게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라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니까. 물론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데이터가 아닌 나의 감일뿐이다.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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