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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11. 2019

최근 읽은 책들

예전에는 책을 읽고 바로바로 짧게라도 감상을 남겼는데, 브런치에 ‘서평’이라는 이름을 달고 올리면서부터는 뭔가 그럴듯한 완결된 ‘글’을 써야 할 듯한 압박감에 후기를 쭉 올리지 못했다. 모든 책이 전부 인상적인 감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읽었던 따로 쓰기 좀 그런 책들 짧게 한꺼번에 올려본다.

<악몽 조각가> - 박화영 3

예전에 최제훈 작가의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었을 때처럼 놀랐다.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스토리텔링에 일단 읽는 재미가 있었고, 다소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 드물기에 반갑기도 했고. 화장실 가이드, 자살 관광특구, 벽, 무정란 도시, 악몽 조각가, 공터, 혀, 골목의 이면처럼 일단 소재부터가 굉장히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한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나 웹툰 기기괴괴 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흥미로울 듯.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별로이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게 봤다.




<인투 더 워터> - 폴라 호킨스 3

‘재미있는 소설’ 골라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추천하는 소설 중 하나가 <걸 온 더 트레인>이다. 어떤 여운, 감상, 의미 이런 걸 떠나서 그냥 정신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찾는, 일명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재밌어할 만한 그런 소설. 데뷔작인 <걸 온 더 트레인>이 메가 히트하면서 작가인 폴라 호킨스는 완전 갑부가 되었는데, <인투 더 워터>는 그 이후로 펴낸 두 번째 소설이다. 첫 작품만 못하다는 평이 많던데, 전반적으로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정신없이 읽게 되는 점은 똑같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거의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 알고 보니 소설 쓰기 전에 타임스에서 1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여간 잡생각 없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우연의 신> - 손보미 3

소설은 작가가 인식하는 세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현실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소설 속 세계도 참혹하고, 현실을 몽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소설 또한 모호하고. 손보미의 소설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담백하고, 무겁지 않다. 그래서인지 때로 묘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조금 진지하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도 딱 독자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들어간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데 때로는 그래서 더 읽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일 테지만. 손보미 소설의 주인공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휴가를 떠나던 길에 거절하지 못할 의뢰를 받게 된 사립탐정의 이야기.





<아내를 죽였습니까>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
<심연>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스릴러를 연달아 읽다 보니 발견하게 된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주인공들은 주로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찐따 같은 남자에 주인공의 아내들은 그런 남편을 달달 볶고 자제력이라곤 없이 무절제한 생활을 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악처’에 가까운 인물들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런 아내의 등쌀에 치이던 남자들이 견디다 못해 살인을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리는데, 하이스미스가 왜 여성 인물들을 그런 식으로 그려놨는지 잘 모르겠다. 여성이며, 레즈비언이기도 했던 그녀는 사실 대부분의 여성을 싫어했던 것일까, 혹은 여성의 특성 자체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일까 뭐 그런 생각도 들고. 그냥 단순히 책을 잘 팔리게 하려고 의도를 가지고 자극적으로 쓴 것인가 싶기도 하고. 물론 그런 ‘악처들’ 대부분은 그 더러운 성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매력적인 것으로 나온다. <캐롤>의 캐롤이 그렇듯이. 그러고보니 하이스미스 본인 역시 캐롤에 감정이입을 했다고 들었는데, 여자들을 싫어해서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본인 및 자기의 애인이나 라이벌 캐릭터들을 투영한 것일지도.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 김숨 2

김숨의 소설은 처음인데, 읽으면서 참 남성같이 쓰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들은 크게 보면 쥐, 염소, 벌, 자라, 나비 등의 동물이나 곤충 등의 생물을 통해 인간과 그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어떤 존재의 의문을 한줄기로 꿰뚫고 있으나, 그것과 별개로 작중 인물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그에 여성이 반응하는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기보다는 나이든 남성 작가의 소설에서 주로 발견되는 패턴이었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한 시골 아주머니의 의뢰를 받고 저수지를 조사하던 잠수사가 자꾸 자라의 환영을 보다가 어떤 욕정을 못 이기고 아주머니를 겁탈하는데 이르기까지의 사고의 흐름이라든가, 그에 대응하는 아주머니의 태도라든가. 자기 어머니(생모는 아님)를 강간하는 아들의 모습도 그렇고.  물론 소설에 ‘강간’이 등장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쥐가 등장하는 소설 한편을 제외하고선 역시 주인공 전원이 남성이라는 데서 또 한 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슬라> - 김성중 3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생각 외로 아주 좋았다. 100년간 시간이 멈추어버렸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어느 사막이 있는 먼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래서 아주 오래된 어떤 전설 속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오래된 고전 외국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핀 시리즈에서 나온 거라 분량이 긴 편이 아닌데도, 책을 덮고나면 아주 긴 이야기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괜찮은 사람> - 강화길 4

얼마 전 강화길 작가의 <다른 사람>이라는 장편소설을 읽고 너무 인상 깊어 단편집을 찾아봤다. 알고 보니 예전에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호수>란 단편 역시 강화길의 작품이었다. 강화길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뒤틀려 있고, 예민하고, 소위, ‘정상’이 아닌데, 그녀의 소설들은 말하자면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러고보니 <다른 사람> 역시 그랬다. 그녀들의 불안, 그녀들의 경계, 그녀들의 증오, 그녀들의 분노, 그리고 그것의 기원. 나는 매우 좋게 읽었지만 사실 대개의 남성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세계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최은영이나 김애란만큼 팔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 이창현, 유희 2
익명의 독서 클럽 회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그래픽 노블, 그러니까 만화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잘 포착해내긴 했는데 그 점을 제외하고선 그냥 그랬다. 뭔가 재밌으려다 만. 서평 써놓은 후기들 보니 웃겨 죽는다고 되어 있던데 페북에서 더럽게 재미없는 농담 계속 하면서 재밌다고 혼자서만 뒤집어지는 사람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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