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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23. 2019

모든 딸들의 이야기

<친애하고, 친애하는>

“엄마는 왜 맨날 나보고 예민하다고만 해? 엄마가 맨날 그러는 바람에 나는 제때 화도 못 내는 사람이 돼버렸다고! 누가 나한테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해도, 나를 모욕해도, 아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러고서 넘어가기만 했다고! 그리고 두고두고 괴로웠다고! 제대로 화도 못 낸 내가 멍청해서, 그게 제일 화가 났다고! 왜 근데 엄마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내가 예민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엄마가 너무 무심한 거 일수도 있잖아. 그리고 설사 내가 예민한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냥 내 편 들어줘도 되잖아. 그게 엄마잖아! 아니야?”
 
몇 년 전인가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 싸웠다. 사실 싸웠다기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분노에 가까웠다. 전화기를 들고 엉엉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엄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엄마가 너를 잘못 키운 거네. 엄마가 잘못했네.” 그 후로 꽤나 오랫동안 거의 매일같이 이어오던 엄마와의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다.
 
사실 계기는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사소한 일이다. 당시에 페이스북 친구 중에 굉장히 거슬리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었다. 스타벅스 컵을 샀다고 하면 자기는 스타벅스 컵 하나도 이쁜지 모르겠는데 그런 거 사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간다는 둥, 아이들 옷 어떤 스타일이 이쁘다고 올리면 자기는 애들한테 이런 옷 입히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둥, 적극적으로 싸우자고 나서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자못 신경이 날카로워질 만한 댓글을 달곤 했다.
 
지금에서야 그 지경이 되도록 왜 참았나, 그냥 친구 삭제나 차단하면 되는 걸 바보같이, 하고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이게 또 막상 그 상황을 겪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쉽지가 않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대 입장에서 정말 별생각 없이 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이 시비를 건 거면 모를까 한참 알고 지낸 사람이다 보니 그런 사소한 일로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는 것이 왠지 쪼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이래 저래 넘기다 보면 또 쌓이고. 물론 이것도 다 과거의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인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사람을 삭제하고 차단해버렸는데 그 뒤에도 괜히 기분이 찜찜해서 진작 뭐라고 할 걸 괜히 참았다, 짜증 난다 하면서 엄마와 통화를 하다 말고 문득 생각이 나 툴툴거리고 말았다. SNS를 안 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페삭이나 차단이니 외계어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으나 대략적인 정황은 전달되었을 터인데, 이야기를 듣다 말고 엄마가 대뜸 한마디 한 것이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폭발해서 울면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왜 엄마는 나에게 늘 예민하다고만 하냐고, 엄마 때문에 화를 내야 할 때조차, 냈어야 할 때조차 못 냈다고. 나보고 여대 나온 여자는 다 미친년 같다고 한 남자한테도 화를 내지 못했고, 전 남친이 여자랑 남자는 다르다면서 우리 부모님 모욕해을 때도 화를 내지 못했다고. 무례와 모욕 앞에서도 스스로를 검열하기 바빠서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고. 전부 다 엄마 때문이라고.
 
사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당연히 아니었는데, 마음속의 무언가가 터져버렸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수도 없이 말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그리고 내가 할머니를 닮았다고. 어떨 때 보면 할머니하고 너무 똑같다고. 30년이 넘게 시집살이를 했던 엄마는 나에게 자주 할머니의 험담을 하곤 했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두고 할머니와 닮았다고 할 때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아무에게도 미처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자라서도 한참 뒤까지, 나는 엄마가 나보다 동생을 더 좋아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때 엄마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가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냥 어느새 흐지부지 되었던 것 같다.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그때의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 내가 엄마에게 쌓였던 감정을 괜스레 화풀이했던 것도 분명하고, 엄마가 그만큼 나에게 반복적으로 예민하다고 말했던 것 역시 사실이고. 하지만 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 뒤로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였다. 이제 24개월이 갓 넘은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등 하원 때 나를 만난 선생님이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아이가 주관이 되게 뚜렷한 편이잖아요.” 또는 “아이가 굉장히 섬세하잖아요.”
 
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 어릴 때는 그저 순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본성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 어릴 때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색깔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나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이맘때의 나를 기르던 엄마의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연령에 비해 주관이 강하고, 취향이 확고하면서, 강요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또한 굉장히 예민한 아이를. 그런 나를 바라보며 지금의 나만할 때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이의 까탈스럽고 예민한 면을 대할 때마다 힘들다는 불만도 물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여러모로 걱정이 많이 된다. 예민한 사람은 순하거나 무던한 이들보다 다양하게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러면서 나는 깨닫는다. 엄마가 나를 두고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고 버릇처럼 말하던 것은 나를 타박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달래고 보듬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말했던 예민하다는 말에는 오히려 아무런 가치판단이 없었다는 것을.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히려 당시에 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읽으며 엄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 (외)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딸인 엄마를 통해 배우지 못해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서러웠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던 할머니, 그렇기 때문에 종종 엄마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던 할머니. 손녀인 나는 마냥 예뻐해 주시던 그분. 반면에 늘 쌀쌀맞고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냉정하기만 한 것 같았던 엄마, 그리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무능력한 것 같기만 한 나. 3대에 걸친 딸들의 이야기는 이리저리 얽히고 얽혀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기억을 다정하고도 안온하게 풀어낸다.
 
주변에 보면 엄마와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실 나로 말하자면 그다지 힘든 축에도 못 끼고. 대부분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엄마와의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너무 부담스럽거나, 너무 쌀쌀맞아서 서운했거나, 원망스럽거나, 어떤 복잡한 감정들. 가끔 딸을 질투하는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그럴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엄마의 입장에서 딸이란 자신의 어떤 분신이자, 자신이 갖지 못한 기회를 누리는 거울 속의 또 다른 자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보다 나은 인생을 살도록 당연히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기도 하는.
 
다시 우리 엄마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오래도록 엄마가 할머니를 미워한다고, 미워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실은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막상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흘린 사람은 엄마 혼자였다. 96세의 호상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하는 와중에 엄마는 며칠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실은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의 마음 한편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늘 자리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내가 나는 너무 쓸모가 없다고, 성격도 나쁘고, 친구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사람들은 다 나를 싫어한다며 엉엉 울었을 때, 왜, 우리 딸이 좀 까칠하기는 해도 얼마나 착한데.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도 안 하고 자기 일도 알아서 잘하고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하고 이쁜 딸인데, 나는 우리 딸이 너무 좋아, 존경하고 사랑해, 하고 말해주었던 것 역시 엄마였다.



⭐️⭐️⭐️⭐️ 그것은 내가 상황을 수습하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떠올린 질문이었을 뿐이다. 그 순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이던, 진실을 어떻게 감춰야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던 사람의 표정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p.80 나는 정말 엄마가 무언가를 말해주기를 바랐다. 간호사가 옆 병실로 들어서면서, 수액 체크하러 왔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엄마가 제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장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짜 자신의 자아실현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실수로 아기를 갖는 그런 멍청한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그러니까, 아기를 낳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리 없으며, 나는 젊으니까 앞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해주기를. 지금 당장은 이렇게 벌어진 일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벅차 우리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의 선택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엄마도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나라면 예전처럼 도망만 가지 않고 무엇이 되었든 내 미래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그저 물병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엄마는 벌을 받는 사람처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고는 그저 이렇게 말다.
“아니야, 무리해 그럴 거 없어. 결혼해 아이만 키우는 것도 좋은 삶이지.” -p.110-111 대부분의 딸들의 서사는 교육받지 못했고 가난한 어머니를 극복하거나 혹은 대신해 자신의 길을 걸어가 마침내 다른 세계로 진입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대체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애증,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디에서도 우리 엄마와 같은 유형의 엄마를 본 적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랫동안 그것들이 나와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또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이고 나와 엄마의 이야기 역시 수많은 형태의 모녀 서사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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