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스토너>는 제목 그대로 스토너란 이름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존재감이 없어 주변인들에게 어떤 특별한 인상도 남기지 않는, 어느 날 당신 곁을 스쳐갔을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소설은 스토너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의 궤적을 시간의 순서대로 성실하게 따라간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대학에 진학하고, 우연히 학업을 지속하고, 어쩌다 보니 교수가 되고, 그 와중에 우연한 계기로 낯선 여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그저 그렇게 살다가, 어쩌다 보니 외도 문제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하고, 연구성과를 낼 뻔한 적도 있지만 결국은 못 내고, 학내의 정치싸움에서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다가도 꾸역꾸역 버티며 지내다가, 훗날 조용히 숨을 거두는 한 남자.
흔히 너무도 드라마틱하거나 특이해서 믿기 어려운 사건들을 두고 ‘소설 같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소설 같다는 표현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토너의 이야기는 전혀 소설 같지 않다. 너무 평범해서 어디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평범성이 외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에게서 자신의 무언가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자기가 천재가 아닌 그저 그런 재능을 지닌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실제로 이동진 평론가와 신형철 평론가가 인생의 책 중 한 권으로 <스토너>를 꼽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으나 뼛속 깊이까지 스토너에게 이입하거나 그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읽으면서 스토너의 아내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스토너의 아내인 이디스란 인물은 굉장한 악처로 묘사된다. 특별한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결혼 이후에 늘 남편에게 냉담하고, 수시로 바가지를 긁고, 집안을 어수선하게 해서 그의 연구를 방해하는 한편, 딸과 그의 유대관계를 파괴하고, 남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와중에도 이혼은 해주지 않으므로.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는 스토너를 동정하고 이 이디스란 인물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면 이디스 입장의 말은 또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지나친 통제 아래 마치 인형이나 애완동물처럼 길러지다가,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별볼일 없는 스토너란 남자가 자신에게 반했다며 집에까지 찾아와서 청혼을 해버리는 바람에 보수적인 부모는 남자에게 청혼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시집보내려 하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되고, 생전 처음 하게 된 성관계는 굴욕적이고도 충격적인 경험이었으며, 넉넉하고 부유하던 성장환경과 다르게 낯선 곳에서 하는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은 너무도 힘들고, 그렇게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지내는데 숫기도 요령도 없는 남편은 이런 자신을 대하기 어려워하고, 어쩔 줄 몰라하더니 그저 서재에 틀어박혀서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고,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제자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그것을 감추려고도 하지도 않는다면.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이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나는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주인공 스토너를 비난하거나 도덕적 심판을 하거나 이 소설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남성들이 주인공 스토너에게 이입하는 것만큼의 감정이입과 공감이 나에게는 어려웠다는 이야기. 아마도 그것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이었다면 나 역시 스토너에게 깊이 이입하고 공감하며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므로, 이 소설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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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