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May 09. 2019

이팝나무 그늘 아래

수족구는 법정 전염병이라 한 번 걸리면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받을 때까지 격리해서 생활해야 한다. 보통은 일주일에서 열흘 가까이 걸리는데, 학교나 유치원 등은 당연히 못 가고 원칙적으로는 집에만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애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랑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있는 것도 못할 일이다. 그나마 하루 이틀이면 또 모를까.

7세와 3세 둘을 데리고 어제 종일 지지고 볶았더니 만 하루 만에 한계가 왔다. 아들이 놀이방 가자고 조르는데 열도 없고 눈으로 봐선 티도 안 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를 가자니 지겹다고 하고. 어쩔까 하는데 문득 예전에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 짚라인이 있던 게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서울 갔을 때 한강에서 짚라인을 타면서 아이가 아주 즐거워했었다.

예준아, 우리 어릴 때 살았던 아파트 생각나? 응! 거기 큰 형아들 가는 놀이터에 줄에 매달려서 쭉 내려오는 거 탔던 거 생각나? 응! 우리 거기 갈까? 어, 나 아기였을 때, 거기 갔었잖아! 그래서 결국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놀이터로 원정을 가기로 했다. 출발하면서 보니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 집 앞에서 꼬마 김밥이랑 뽀로로 음료수를 샀다.

그곳은 내가 대전에 내려와서 살았던 첫 번째 집이다. 남편과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 출산하면서 내려와서 처음 짐을 풀었던 곳. 실은 조리원에서 퇴소하면서 아이랑 바로 내려와서 짐이랄 것도 없었다. 장기출장으로 외국에 오래 있었던 남편은 내가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는 동안 부동산을 돌아다녔고,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조리원 컴퓨터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급하게 가구를 사 넣었다.

새로운 집에서 남편이 출근하고 아기랑 둘이 집 안에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친정에서 고작 두 시간 떨어진 곳임에도 해외여행을 다니던 때보다도 오히려 더 낯선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퇴근 후나 주말에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며 종종 내 등을 떠밀어 내보내곤 했는데, 지금 같았으면 얼씨구나 하고 한걸음에 달려 나왔겠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마지못해 나왔다. 어디라도 가라고 하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다.

한 번은 아파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단지 상가 내의 파리바게트에 가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시고 들어갔다. 언젠가는 나름 모험(?)을 한답시고 30-40분을 걸어 멀찍이 갔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는 1킬로도 떨어지지 않은 바로 옆 블록이었던 적도 있었다. 지리를 잘 몰라 같은 곳을 뱅뱅 돌며 헤맨 것이다. 아이가 어리던 시절에는 자주 거실에 나와 밤새 자지 않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안고 달랬다. 거실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들 뿐이었는데, 집들이 온통 깜깜하면 괜히 더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드문드문 불이 켜진 곳이 있으면 그날은 왠지 조금 더 잘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맘 카페 등을 통해 간혹 알고 지내는 엄마들이 생겼으나 관계가 오래 가진 않았다. 사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없으면 아이 없이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또 자연스레 멀어지기 마련이다. 간혹 이야기도 잘 통하고 좀 가까워졌다 싶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 신도시이다 보니 다들 이사가 잦았고, 이사 가서도 계속 연락하고 만나요,라고 해도 결국은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겨우 친해졌다 싶었던 같은 학교 후배 역시 6개월 만에 서울로 이사를 갔다. 언제부턴가는 아이와 늘 둘이서만 다니게 되었다.

내가 이사 간다고 할 때 가장 아쉬워해 주었던 사람은 택배 기사님이었다. 당시에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고 밖에도 못 나가 매일 같이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샀다. 아이 책을 사고팔기도 많이 했다. 자연스레 아저씨와 가까워졌고, 언젠가부터 늘 간식거리나 음료수를 챙겨드렸던 것 같다.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종종 트럭을 세우고 배달용 수레를 내리는 아저씨가 보였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맞은편 길가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하필이면 오늘 시설을 정비하는 날이었다. 아이는 길게 쳐진 공사용 테이프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속상해하는 아이들을 달래서 벤치에 앉아 김밥과 음료수를 먹었다. 꼭 소풍 온 기분이었다. 다른 아파트 벤치로의 소풍이라니. 아이들이 먹고 있는 동안 옆에 예전에 친했던 기사님이 속했던 회사의 택배차가 와서 섰다. 트럭에서는 아저씨가 아니라 양팔 가득 문신을 한 젊은 남자가 내렸다. 남자의 뒤로 꽃이 활짝 핀 이팝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때는 있는 줄도 모르던 것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간 열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