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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May 24. 2019

80년대생이 사는 법

<IMF 키즈의 생애>

<IMF 키즈의 생애>는 1997년 IMF 당시 10대였던 이들 일곱 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본래 언론에서 다루던 IMF 키즈의 의미는 IMF의 영향을 가장 크게 경험한 세대, 즉 대학 졸업 후 취업난에 시달리고 실직한 부모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1970년대 출생자들을 의미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IMF 시대에 초중고의 공교육 과정에 놓여있었던 이들, 당시 아직 미성년이었던 1980년대생을 일컫는다. 1981년부터 1989년생까지.
 
흔히 IMF는 부지런하고 근면한 국민들이 밤낮없이 노력하여 전 국가적 위기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해낸 사건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든, 어떤 사람이든, 해당 사건을 겪기 전과 그 이후의 상태가 동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그와 같은 기존의 서사를 거부하고, IMF 자체가 우리 사회에 모종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즉 IMF를 겪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었나를 추적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통해 사회 전체에 어떤 흐름이나 논리의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를 살펴보는 책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세대론인 셈.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세대론을 말하는 데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수많은 경우의 수로 인하여 해당 ‘세대’의 특정한 공통점을 도출해내는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설령 어느 정도 보편적인 특징을 포착해낸다 할지라도 그에 반하는 예외적인 사례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다분하다. 그리하여 저자는 어떤 결론을 섣부르게 도출하는 대신, IMF 시대를 가장 절실하게 겪지는 않았지만(즉, 당시에 직접적으로 돈벌이를 해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그 영향력 아래 놓여있을 수밖에 없었던 1980년대생 일곱 명을 인터뷰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애가 IMF 전후로 어떠한 궤도로 나아갔나를 살피고 기록한다.
 
아무리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작 7명에 불과한 사례로 세대와 시대를 조망한다는 것이 너무 무리한 시도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살피다 보면, 비록 한 사람의 인생은 개인이 하는 무수한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졌던 선택지와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의 인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 등이 이전 시대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애매하지만 공통적인 분위기를 감지해내게 된다.
 
이들 일곱 명의 인생은 같은 80년대생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모든 것이 다르다. 성별도 다르고(여성 4, 남성 3), 출신지역도 다르고, 가정환경과 성장배경도 다르고, 취미도, 관심사도, 이후의 진로도 모두가 다르다. 과학고와 카이스트, 그리고 서울대를 거쳐 마침내 치과의사가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전문대를 중퇴하고 식당을 하는 이가 있다. 스타트업 직원과 직업 정치인이 있다. 밤낮없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력은 해서 뭐하나 큰 거 한방이면 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프레시안 기자로 일했던 저자 안은별은 그 자신 역시 1986년생, 즉 같은 IMF 키즈로서 이들 인터뷰 대상자 일곱 명의 생을 굉장히 객관적이고도 치밀하게 포착하여 전달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인터뷰이들 각각의 생은 마치 한 권의 소설처럼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여기서 소설 같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기하고 놀라운, 현실에서 보기 드물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납득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처럼.
 
영화 <박하사탕>은 기찻길 철로 한가운데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버리고 서서 외치는 한 남자의 절규로 시작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의 외침은 기차의 기적소리를 뚫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3일 전, 94년 여름, 87년 봄, 84년 가을, 80년 5월, 그리고 마지막 79년 가을. 매우 단편적이지만 그의 인생의 중요한 변곡적인 순간들이다. 앞에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의 특정한 행동들은, 뒤에 등장하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로 설명된다. 그리고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은 그가 어떻게 그런 과정에 도달했는지를 자연스레 이해하고, 해당 시대가 지닌 어떤 폭력성의 어렴풋한 향기를 느끼게 된다.
 
IMF 키즈의 한 명으로서 (80년대생) 우리 세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당시 우리 앞에 주어졌던 선택지들이 어땠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예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일곱 명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었고(앞서 말했듯이 인터뷰지만 인터뷰어의 역량을 통해 마치 소설처럼 전달된다), 이들(우리들) 사이의 어떤 공통적인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 그와 별개로, 결국 어떤 인생이든지 다 그 나름의 갈등과 고민과 부담이 있다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다시 느끼게 된 것도 좋았다.
 
현실세계라면 결단코 마주치고 싶지도 어울리고 싶지도 않은 타입의 인물 역시 책을 읽음으로써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예컨대 인터뷰이 중 한 명인 홍스시 씨(여)는 2년제 대학교 광고창작과에 진학해서 생활했던 경험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를 한다.
 
“군기반장 하면 진짜로 때리는 건 아니어도 다 ‘빠따’ 들고 있죠. 완전 쌍욕 다 했는데? 요즘이었으면 저도 어디 가서 조사받고 있을 수도 있어요. (...) 저는 근데 서로 강압적으로라도 이름 알고 이런 게 좋다는 생각이 아직도 조금은 있어요. (...) 거기 들어가려는 신입생들을 위한 카페도 있었고 거기에 누누이 쓰여 있었거든요. 여기는 그런 게 세다, 다 알고 오셔야 된다. 군대에선 군번대로 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죠.”
 
평소에 서열과 위계질서, 권위적인 문화에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말을 섞긴커녕 눈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맡겨졌다가 어머니에게 맡겨지고, 다시 이모네로, 할머니에게로, 작은 아버지 댁으로 등등 이곳저곳 떠돌며 소속감 없이 지냈던 경험, 그리고 ‘할머니와 사는 아이’라며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맞으면서 그에 대항하며 축적된 그녀의 인생의 ‘맥락’을 통해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강한 규율은 그녀에게 오히려 어떤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전 제 위치가 확실하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1학년 다음에 2학년이 되고 내 위에 누가 있고 내 밑에 누가 있고 이런 것들. 가족이라는 견고한 틀이 없이 자라다 보니까 그런 확실한 게 남들이 보면 ”인권 탄압이야! “ 그럴지라도, 숫자로라도 나의 위치가 있고 그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동의할 수 없고 현실 세계에서 어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납득’하고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 마치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보고서 박사모 노인들의 심경을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모두 중립적이고 건조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전후 맥락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여 해당 인물의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낸 저자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여섯 명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책의 한계점이라 함은, 저자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애초에 인터뷰이들 자체가 비록 성장과정과 가정환경은 다 달랐을지언정 자신의 서사를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록 운이 없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동시에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그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물론 대성공한 사람도 없지만 어떻게든 벼랑 끝까지는 밀리지 않은 채로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점점이 있는 개인을 통해 시대를 어렴풋하게 파악하는 것이 본래 이 책의 목표였다고 하면, 정말 그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최악의 상황’들은 여기 적혀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



어떤 종류의 위험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면, 과장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만큼 자신이 어떤 속성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느껴야 할 것이다. -p.62, 여성의 가족, 여성의 일 (김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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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였다면 지금 같은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거예요. 공부를 굉장히 잘했고 돈을 잘 번다고 알려진 직업을 갖고 있지만, 결국 남편을 만나서 중산층 비슷한 게 됐죠. -p.71, 여성의 가족, 여성의 일 (김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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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사회적으로 없어진 지 오래잖아요. 차곡차곡 쌓아서 뭔가를 한다? 직업이 없는데 뭘 모아요? -p.106, 1997년의 해법, 그 남자의 해법(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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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거의 모든 현장에서 불안정하고 금전 보상이 빈약한 노동을 동반한다. 이는 하고 싶은 일 내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신념과 자신의 밥벌이를 일치시켰을 때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 역시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감각 중 하나다. -p 170-171, 직업으로서의 정치, 삶으로서의 정치(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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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은 단지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아파트가 소비되는 방식이나 아파트에 가치 매기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존엄을 지키는 쪽이 오히려 한국인의 분수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p.292, 어느 ‘예술-지방러’의 불분명한(정확한) 생활 잉태(이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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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손 들어” 이러면 스무 명 손 들고 이런데였어요. (초등학교를 다닌 월곡보다) 하남이 좀 더 오래된 주택가 쪽이라서 그런 환경에 있는 애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편모가정, 편부가정, 조부모 가정 이런 걸 빼고 이른바 정상가족을 세면 몇 명밖에 안 남는 거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불량한 친구들은 대부분 정상가족 출신이었어요. 그나마 기반이 있어야 일진을 할 수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p.294, 어느 ‘예술-지방러’의 불분명한(정확한) 생활 잉태(이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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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대성학원에서 진학 상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알게 된 건데, 지방 애들한테는 논술이 불리하니까 논술 있는 전형을 피하거나 점수를 많이 접고 들어가야 되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그땐 너무 몰랐던 거죠. 교사들도 빠르게 바뀌는 입시 전형에 발맞출 정도로 빠르지 못했고. 그들도 다 촌동네 사람이니까. 논술 학원이나 이런 것들이 있는지도 몰랐고. 있는 걸 알았어도 효용성이 있을까 의심했을 거 같아요. ‘난 원래 글 잘 쓰는데’. 이 정도로 철모른 때였죠. 진학 지도 선생님들도 누구 하나 명확한 근거 없이 부모님한테도 그냥 얜 서울대 써도 된다고.... 그렇게 망해버렸어요. -p.305, 어느 ‘예술-지방러’의 불분명한(정확한) 생활 잉태(이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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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2남이 있을 때 여자아이를 낳기 위해 한 번 더 임신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2녀의 구성이 되었을 때 임신을 고민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이런 구성은 우연이 아니다. 명백한 남아 선호 현상이었다. 자녀를 많이 낳던 시대에는 다른 방식, 예컨대 교육 기회의 차등 따위로 나타났던 문제가 보통은 둘, 많아야 셋만 낳는 핵가족의 시대이자 남녀가 동등하다는 생각은 전파되었지만 표면 밑으로는 전혀 흡수되지 않던 시대에 와서는 이런 자녀 구성으로 드러났다. -p.335, 어른인 듯 어른 아닌, 어른의 시트콤(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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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직업’과 ‘작업’에 대한 그의 감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돈이 안 되는 창작의 영역에 있는 경우, 그 일을 직업과 일치시켜 정체성의 일원화를 도모할 것인가, 아니면 ‘직업은 직업, 작업은 작업’이라는 균형을 잡을 것인가. -p.362, 어른인 듯 어른 아닌, 어른의 시트콤(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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