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인 첫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말을 안 듣는다. 예전에는 하지 마 혹은 안돼 라고 경고하면 곧장 멈추던 것도, 이제는 몇 번씩 말해도 무시하면서 계속할 때가 많다. 며칠 전에도 자꾸 장난을 치길래 여러 번 반복해서 타이르다가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계속 그런 식으로 멋대로 할 거면 엄마도 이제 너 신경 안 써. 그렇게 말하곤 아이에게서 등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아이는 뒤에서 다리를 붙들고 울면서 늘어졌다. 엄마, 엄마. 그렇게 매달리는 아이를 안 보이는 척, 안 들리는 척 밀쳐냈다. 아이는 더 강하게 매달렸다. 그럴수록 더 강한 힘으로 밀어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이가 마치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보육 교사 혹은 부모가 아이를 때리다 죽이거나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동물과 어린아이처럼 약한 존재의 고통 앞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측은지심이므로 그들의 그런 분노는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포함하여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까 그렇게 분노하는 대다수가 실은 아동학대의 진행형 혹은 잠재적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동학대는 영화 속에 주로 등장하는 주정뱅이 아빠만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아동학대 기사에는 “그 작은애를 때릴 데가 어딨다고.... 천벌 받은 인간들”이란 댓글이, 노 키즈존 관련 기사에는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가르쳐야지”란 댓글이 동시에 달리는 우리 사회에서라면 말이다.
며칠 전의 상황에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이가 그렇게 쓰러질 줄 모르고 아이를 밀쳤던가? 아니다.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다. 아이를 가르치고 싶었다. 같은 행동을 더 이상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말로 해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잘못하면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아이를 때릴 수는 없으니 무시했고, 그런 와중에 울며 매달리자 밀쳤던 것이다. 아이가 더 세게 매달리면 일부러 더 세게 밀었다. 거기서 멈추면 아이가 같은 행동을 금세 반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깨달았다. 울먹이는 눈에 담긴 공포, 고통으로 일그러진 입. 그때 나는 아이를 학대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매를 맞으며 자랐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훈육의 일종이었다.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네가 비뚤어질까 봐 가르침을 주는 거야. 사랑하니까 때리는 거야. 다 너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그렇게 자란 누군가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때리고 있기도 하다. ‘체벌’이라는 명목 하에. 그러나, 사랑해서 때리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많은 이들이 학대와 체벌을 구분지어서 말하지만, 그 둘의 경계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5대까지만 때리면 체벌이고, 6대부터는 학대인가? 전용 회초리로 때리면 체벌이고, 손을 사용하면 학대인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체벌이고,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면 학대인가? 그 마음은 누가 판단하는가.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학대를 테마로 진행했던 5번의 강연을 묶은 책이다. 체벌과 학대 관련한 담론을 문학, 역사, 여성, 심리, 종교의 5가지 주제를 통해 풀어낸다. 문학 속의 아동학대 이야기, 역사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본 시선, 가정폭력 문제를 공권력이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고민, 아동학대를 저지르거나 체벌을 가하는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주목한 아동학대 문제. 각각의 챕터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도 모두 다른 각도로 접근한다. 강연 자체도 좋지만 그 뒤에 이어진 질의응답, 관련한 추천서적까지 정리되어 있어서 상당히 짜임새 있고 좋은 책이었다.
많은 문장을 옮겨 적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의 종교 챕터이다. 사실 이 챕터의 이름이 종교가 된 이유는 강연자가 종교연구가이기 때문이다. 종교연구가, 그것도 애도 안 키우는 사람이 웬 아동학대 이야기를? 싶지만, 실은 종교 연구는 문화 연구와 관련이 깊다. 한 사회의 종교문화는 결국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선상에서 그는 체벌이 아닌 ‘체벌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체벌 자체가 아닌 체벌문화로 초점을 이동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아동학대가 특정한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뉴스에, 신문에, 인터넷에서 보고 듣곤 하는 아동학대 가해자와 내가 실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챕터를 읽으며 사실은 노키즈존과 ‘맘충’이라는 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노키즈존과 맘충이 아동학대랑 무슨 상관이야 싶겠지만, 체벌‘문화’라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썩 다르지 않은 일들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잘못을 하면 매를 맞았다. 체벌은 잘못한 행위에 대한 어떤 대가이며, 심판이고, 결과인 동시에 응징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매’는 가정에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존재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잘못을 했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노키즈존은 자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부모들에 대한 응징이다. 애는 그래도 너는 그러면 안되지. 그렇다고 성인을, 그것도 타인을 때리거나 체벌을 할 수는 없으므로 아예 배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응징뿐 아니라 경고의 효과까지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모두가 동시에 맞았을 때보다 본보기로 누군가가 특정되어 맞았던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학생들은 공포에 질리고, 자신을 점검하는 과정을 거쳤다. 노키즈존과 맘충 용어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진짜로’ 문제 있는 사람들을 응징하고 배제하는 행위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것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노키즈존에 대한 찬반 여부와는 무관하게 어떤 것을 본보기 삼아 ‘벌’을 주는 행위, 그것이 만들어내는 어떤 분위기, 그리고 문화는 사회에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폭력이 대물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은 이러한 ‘배제’ 역시 대물림된다. 어떤 잘못된 행위에 대한 경고 조치가 조언이나 시정요구가 아닌 배제일 경우 배제를 당한 사람은 사회문화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그러니까 실제로 한국의 부모가, 한국의 아이들이 다른 나라 대비 유난히 더 잘못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아이들은 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러한 상태로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각 가정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겠지만, 아마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배제를 당했을 텐데, 결국 그 아이가 자라면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배제하거나, 배제되거나.
그러므로 아동학대와 관련한 이야기는 늘 같은 결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관계자들 뿐만 아닌 사회의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좀 더 강력한 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사회 전반적으로 보다 많은 연구가 되고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 ‘체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때리는 것은 그냥 때리는 것일 뿐, 사랑의 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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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그 체벌들, 매 맞는 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가공의 믿음 덕분이에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믿음인데 사실 그 믿음은 철저하게 허위이고 거짓이죠. -p.28, 김지은 - 동화 속의 맞고 때리는 아이들
매에 어떤 사랑이 있습니까? 사랑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린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단 한 대도 때려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p.50, 김지은 - 동화 속의 맞고 때리는 아이들
이제까지의 학교 교육처럼 어른들의 결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행동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아이들을 대하고 교육하는 방식은 생각의 훈련이라든가 연습,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고 경험이 늘어나고 생각하는 연습이 누적될 때 합리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들을 할 수 있겠죠. 생각하는 경험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p.91, 김한종, 인류는 아동을 어떻게 대했는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데 차이가 있고 아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결국 모든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요. 그런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회가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용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지까지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p.92, 김한종, 인류는 아동을 어떻게 대했는가
그래서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갔으면 해요. 결국 관계에서의 불평등을 알아채는 능력이 절실합니다. 한국사회에는 사실상 이런 걸 일깨워줄 수 있는 교육 자체가 없습니다. -p.117, 송란희, 아동의 다른 이름은 여성이었다
피해자의 의사를 아예 개입시키지 않고 그냥 국가가 알아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하는 게 피해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아닐까요. 성폭력도 예전에는 친고죄였습니다. 본인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를 개시하는 그런 범죄였던 거죠. 지금은 친고죄가 폐지되었죠. 가정폭력의 경우에도 처벌 의사를 피해자에게 물어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p.148, 송란희, 아동의 다른 이름은 여성이었다
바로 이런 기회를 탈취하는 것이 폭력과 체벌이 야기하는 학습 효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폭력과 체벌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평화적인 수단, 더 효과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수단을 접하고 배울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에요. 스스로는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학습할 기회를 계속 박탈당하는 거죠. -p.161, 표창원, 아동학대범, 우리와 다른 괴물일까
보통 우리나라는 마지막 단계인 처벌에만 집중하고 관심을 갖습니다. 가해자를 보며 분노하면서 중형 선고를 요구하는 것인데, 단순히 ‘처벌’만 외치는 식으로 피해와 가해의 그 무수한 악순환이 해체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모순적인 생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가해를 저지르는지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p.174-175, 표창원, 아동학대범, 우리와 다른 괴물일까?
어쩔 수 없이 때린다는 말도 많이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묻습니다. 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냐고요. 가령 주식 투자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주식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고 공부합니다. 마찬가지로, 정말로 상대를 때리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하면 때리지 않을 수 있는지 열심히 알아보고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때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p.201, 구형찬, 종교와 체벌
그렇다면 체벌 자체가 아닌 체벌문화로 초점을 이동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체벌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체벌문화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체벌문화가 형성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체벌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다수야말로 체벌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화는 서로 다른 개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에 의해 형성됩니다. -p.202-203, 구형찬, 종교와 체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