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워치>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마고는 우연히 이웃집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나름 감정을 수습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잘 되지 않아 결국 남편을 떠나 새로운 사랑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역경을 극복하고 이루어졌던, ‘운명’인 줄 알았던 새로운 사랑 역시 머지않아 시들해지고 만다! 그러니까 예전에 남편과의 관계가 그랬듯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영화의 초반부에 수영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마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것은 반짝거리지. 그러나 반짝거리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변해.” 나는 이 대사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마고의 권태로운 표정과 더불어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고 느꼈다.
이와 같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그러한 기분을 일본어로는 ‘모노노아와레’라고 한다. 이를테면 삶의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들. 이 모노노아와레는 아마도 생의 본질이자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다.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서글픔, 두려움, 허무, 그리고 고독 등.
오늘날처럼 ‘쿨’하고 ‘힙’한 것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종종 어리석거나 순진해빠진 모습으로 취급되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어쩌면 사랑만큼 인간의 기쁨과 슬픔, 욕망과 허무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사랑’에 열광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세라 워터스의 <나이트 워치>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런던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케이, 줄리아, 헬렌, 비브, 레지, 덩컨, 프레이저, 7명의 인물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야기. 한마디로 줄인다면 어떤 사랑의 끝과 시작을 다룬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인 이유는, 소설 속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1947년에서 시작하여, 1944년, 그리고 1941년으로 3년씩 거슬러 올라간다.
첫 장인 1947년에는 매일같이 거리를 이유없이 헤매고 있는 케이, 무언가 권태로운 듯한 비브와 레지 커플, 점차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연인 줄리아를 보며 질투하고 불안해하는 헬렌, 오랜 시간이 지나 어색한 만남을 갖는 프레이저와 덩컨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딘가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금방이라도 끝날 듯한 연인들. 혹은 알 수 없는 관계의 인물들. 물론 이런 이야기들 그 자체로는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다. 독자 입장에서 역시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고.
그렇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장, 1947년. 물론 3년을 거슬러 올라간들 관계가 위태로워지기까지의 상세한 연유가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1944년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1947년까지 이후 3년간의 이야기가 아닌, 1944년 그 당시의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즉 독자들 입장에서는 틀림 그림 찾기하듯, 혹은 시간대 별로 같은 장소를 찍은 사진을 보듯, 달라진 풍경을 보며 그간 있었던 일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그럼에도 1944년은 1947년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일단 줄리아와 연인관계였던 헬렌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지인 사이였으며, 나머지 인물들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듯 했던 케이는 2장에 와서야 헬렌의 연인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비브와 레지의 관계는 1장보다는 더 뜨겁고 간절한 상황이지만 둘 사이에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독자는 1장에서 비브가 왜 그토록 고독하고 허무한 감정을 느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덩컨과 프레이저는 감방의 동료였던 사실이 밝혀진다. 이런 식으로 베일에 쌓여 있었던 인물들간의 관계가 서서히,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마지막 3장은, 아예 아무런 관계도 시작되기 전,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 첫 장면을 그린다. 전쟁 상황에서, 매일 같이 누군가 죽어나가고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공습 현장에서, 기차 화장실 칸에서 누군가를 운명적으로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 바로 그 순간들.
다른 많은 소설에서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인물 개개인이 어떻게 변했는가가 주된 포인트였다면, 이 소설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 간 관계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그 과정에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과거에는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하고, 무엇에도 흥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하며 되는대로 살아가는 듯한 인물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어떤 이가 과거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물론 사랑 이야기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당대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은 전쟁이 전장을 넘어 보통 사람들의 일상까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삶을 지속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또한 퀴어들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는 오늘날의 현실이 과거와 썩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 동질감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의 남다른 지점을 하나 꼽는다면, 대부분의 문학작품이 읽으면서 어떤 형태로든 인물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며, 그들의 흥망성쇠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 반면에 여기서는 그러한 감정을 느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미 1장에서 그들의 미래(?)를 모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물들이 누리는 행복과 설렘이 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서글픔과 애달픔을 느끼게 된다.
모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어떤 흐뭇함과 감동을 주지만, 그것은 우리가 끝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떻게 끝날지 아는 사랑의 눈부신 시작을 지켜보는 것은 오히려 너무도 가슴이 아픈 경험이었다. 그러나 또 놀랍고도 재미있는 점은, 어떤 식으로든 끝나버릴 관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그 장면이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머지 않아 져버릴 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처럼.
한때는 운명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이 지겨워지는 과정, 너무도 헌신적이고 이상적인 연인 대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상대에게 끌리고 마는 어리석음, 그런 스스로를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끌려가고 마는 그런 마음, 헛되고, 덧없고, 이기적이고, 연약해서, 그래서 아름다운 마음들.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아름답게 그려낸 사랑의 시작을 본 적이 없다. 이 문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문장이 묘사하는 사랑이, 실제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끔찍한 아수라장에 이처럼 생생하고 이토록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 놀라움과 두근거림, 경탄, 무언가가 특별해지는 어떤 순간에 대한 포착. 비록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알아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