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정아은 작가가 쓴 <엄마의 독서>는 양육서나 학습서만을 다룰 것 같은 제목과는 다르게 온갖 장르의 책을 망라하는 독서에세이다. 작가 정아은이 전업주부에서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읽었던 책들에 대한 감상, 그리고 그 당시 느꼈던 생각들을 풀어놓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라면 특히 공감할만한 내용이라 작년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엄마의 독서에 대한 서평은 여기서: https://brunch.co.kr/@seunghyehan/25)
다만 알아두어야 할 점은, 거론되는 책들이 꽤 많음에도 책들 자체에 대한 평이나 감상보다는 그 책을 읽음으로 연상되는 본인의 기억, 즉, ‘에세이’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읽어볼 만한 책의 리스트를 추린다거나 ‘서평’으로서 참고할만한 도서는 아니라는 점.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엄마는 독서>에서 거론되었던 책 중에 머리에 남아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서평집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그러나 딱 한 권 굉장히 인상 깊었던 책이 있었는데, 바로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4살 터울의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흔한 경력단절여성의 테크트리를 타던 정아은 작가는 ‘주부’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베스트셀러나 자기계발서, 육아서 위주로 시작되었던 그녀의 독서는 점점 더 반경을 넓혀 후에 소설책에까지 확장되는데, 어느 날 밤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은 뒤 갑자기 어떤 충동을 느끼고 책상 앞에 앉아 정신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쓰고 나서 보니 그게 다름 아닌 소설이었다고. 결국 정아은 작가는 그날을 계기로 계속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훗날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다. 물론 첫 소설을 쓴 뒤 등단하기까지의 사이에는 5년의 세월이 있었지만.
그러한 사연을 읽으며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란 책은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소설이라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사람에게 글을 쓰고픈 충동까지 일으킨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인데, 국내 역시 2004년 출간된 이후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흔히 베스트셀러에 갖게 되는 편견에 더해, 2000년대 유행했던, 지금 보면 매우 촌스러운 일러스트 표지를 보면 결코 선뜻 읽고 싶은 기분이 들만한 책이 아니지만, 도무지 정아은 작가의 저 사연이 잊히질 않는 것이다. 주부를 소설가로 탄생시킨 소설이란 대체 어떤 내용일까. 그런 궁금증이 끝내 지워지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해당 글에서 소설에 대한 언급이 그것이 전부였다는 점이다. 나름 서평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평가 등 다른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런 고로 결국 읽어보았는데,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는 굉장히 중요하고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는데 어지간히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 소설은 아무런 정보를 모르고 보아야 최대한의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제대로 된 서평을 쓸 수 없는 종류의 책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설마 재미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읽었는데, 실제로 상당히 재미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서평은 여기서: https://brunch.co.kr/@seunghyehan/197)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 자동으로 순위권에 드는 작품들을 제외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는 경우에는 나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역시 다른 베스트셀러들이 갖추고 있는 요소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인물의 심리와 배경 설명은 최대한 간결하게 줄일 것, 등장인물은 나름의 능력을 갖출 것, 위기 상황에 대한 설명은 책의 초반부에 제시할 것, 독자가 쉽게 접하기 힘든 사회(연예계, 방송국, 범죄조직, 성매매 산업, 예술계, 다단계 기타 등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제시할 것, 등등등. 마치 베스트셀러를 위한 규격화된 채점표가 있다면 거기서 만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요소를 아주 적합하게 갖춘 책이었다.
책 자체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주 깊다거나,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게 될 만한 ‘명작’이라고는 말할 수는 결코 없겠지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가끔씩 거슬릴 때도 있지만, 머리를 식히며 ‘재미’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일 때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그런 책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읽는 게 가장 좋겠으나, 일단 ‘읽어볼 마음’이 들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기 때문에 아주 기본적인 설정만 이야기하자면, 순진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다단계 조직과의 싸움에 관한 내용이다. 매우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