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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22. 2018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엄마의 독서>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를 읽었다. ‘엄마의 독서’라니, 육아서적인가, 육아에 도움되는 책 소개인가 싶은 제목이지만, 평소라면 결코 뽑아들지 않았을 타이틀이지만, 이전에 어디선가 괜찮다는 평을 봤던 것이 생각나 호기심에 집어오게 됐다.

막상 펼쳐서 읽어보니, 일종의 육아에세이라는 것도 맞고 육아에 도움되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도 맞기는 한데, 그 방향성과 결에 있어서 <우리아이 초등 전에 읽혀야 할 책 100권>류의 도서 추천 서적도 아니고, 시중에 수백권이 넘는 <좋은 부모 되기>류의 다른 책들과도 좀 달랐다.

4살 터울의 두 아이를 낳아 기르던 저자는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되고, ‘주부’라는 이름에 갇혀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 현실에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엄마 노릇은 버겁기만 하고, 집안에 이대로 갇혀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은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어느날부터인가 책을 읽기 시작한다. 각종 육아서적에서부터 소설책을 비롯하여 온갖 사회과학서에 이르기까지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누구 이야기랑 비슷한데....흡)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녀는 깜깜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여러 문제에 대해 일종의 힌트와 방향성을 얻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단순히 육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과 생의 의미, 타인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그녀가 그러한 삶의 힌트를 하나씩 더듬어 찾아나간 기록이다. 아이들과의 관계, 엄마이자 주부로서의 스스로의 모습을 중심으로 서술한 에세이가 시간대별로 구성되어 있고, 그 당시 읽으며 도움을 받았던 책의 서평이 함께 곁들여져 있다.

책의 초반부에 아이들을 낳은지 얼마 안되어서 육아서를 닥치는대로 읽었다고 하며, 블로그에서 시작해 유명세를 탄 김선미의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와 법륜의 <엄마 수업>을 재미있게 공감했다는 대목을 보고, 실은 그대로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강력하게 느꼈다. 그러나 책취향은 마음에 안 들지만 에세이 부분이 매우 훌륭했던데다가, 경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6년에 걸쳐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든 후 글을 읽고, 쓰다가 신춘문예까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의 이력에 관심이 갔던지라 좀 더 읽어보기로 했다.

시중에 나온 각종 베스트셀러 육아서적을 닥치는대로 섭렵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 책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지향하는 ‘좋은 엄마’라는 대상에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육아서적이 아이를 중심으로 쓰여져 있고, 엄마에게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을 요구한다. 책을 읽고 열심히 실천해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도 않고, 부자연스럽게 친절하게 구는 천사엄마에서 느닷없이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무서운 엄마로 돌변하기도 하고, 그런 행동을 한 날 밤에는 자괴감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왜 엄마라는 존재는 이토록 힘겨워야만 하는가, 왜 여성에게는 이토록 과중한 책임이 따르는가, 아이들을 잘 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분야를 넓혀 다양한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오로지 유희의 목적으로 읽었던 소설책들은 그녀가 소설가가 되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고.)

개별 책들의 서평에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으나 아이들을 키우고 지내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고민, 번뇌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은 깜짝 놀랄만큼 나와 같았다. 실은 나하고만 같은 것이 아니라 엄마라면 대부분이 겪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압박과 다짐, 어떠한 결심,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 등등. 그래서 그녀의 감정상태를 따라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소의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으며 수많은 책을 읽으며 최종적으로 정립된 그녀의 육아철학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란 결국 ‘엄마’라는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타인을 인격적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고. 아이들 역시 아이로만 취급하지 않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합당하게 대우하고, 엄마라는 굴레에 너무 연연하지 않게 되면, 엄마와 아이 모두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그녀는 주장한다. 이는 사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족주의, 모성신화, 가부장제가 복잡하게 결합한 또 다른 단면이다. 그녀의 이야기처럼 단순하게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넘어서 ‘좋은 엄마’가 무엇인지, 그것을 왜 고민해야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는 데서 느리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희망을 본다.

(뒷부분에서 그녀는 하은맘이나 법륜의 책을 비판한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책 같다면서.)


사람들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집에서 노는데 남편은 밖에서 회사에, 대학원 공부에 얼마나 힘들겠니? 먹을 거 잘 챙겨주고 신경 좀 많이 써줘라.” 나는 집에서 ‘놀지’ 않는다고, 집안일과 육아로 한시도 놀 틈이 없다고 몇 번 항변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게 되었다. -p.48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었지만 이 시기에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육체의 피곤함보다는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아이들에게 잘해주려 애쓰다가도 어느 순간 폭발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버릇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큰아이가 제힘으로 제법 많은 것을 하게 된 즈음이었을 것이다. 포효는 주로 조금 더 어른에 가까운 큰아이를 향했다. 아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분출하기 시작한 굉음과 분노에 찬 손짓, 발짓, 한 맺힌 듯 풀리는 폭언은 제 리듬을 타고 맹렬히 기세를 높였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갈 데까지’ 가버렸고, 아이가 잘못했다면서 한참 눈물을 흘린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날 밤이면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애정을 호소하던 아이의 눈빛이 자꾸 떠올라 도저히 의식을 놓을 수 없었다. ‘아이한테 상처를 주었다. 아이는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악마 같은 엄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p.62

다시 읽어보니 대표적인 육아서라 불리는 책들에는 ‘엄마’라는 한 인간에 대한 시선이 결여되어 있었다. 엄마도 아이처럼 살아 숨쉬고 생각하고 자기 의지와 감정이 있는 인간인데, 이런 책들 속에 나오는 엄마는 오직 아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부속물 같았다. -p.233

복잡한 역사를 지닌 이 모성 신화의 여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엄마와 아이의 ‘관계’다. 워킹맘과 전업주부라는 두 갈래 길 중 어떤 쪽을 택하더라도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는, 자신의 실제 감정과 상관없이 언제나 천사처럼 웃는 얼굴을 하려 노력하게 되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가식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뒤 똑같이 반응하게 된다. 엄마는 ‘좋은 엄마’ 연기를, 아이는 ‘착한 아이’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솔직함,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면, 사실대로 털어놓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기, 서로 도와주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유대감 형성하기 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점차 사라진다. -p.260

아이가 탈선해 문제를 일으키거나 정신적으로 벙이 들어도 사회는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처방을 내린다. 1. 부모(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엄마를 호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가 아이를 잘 모 키운 탓이라고 책망하기 2. 아이의 내면에 상처를 준 부모와 그 아이에게 심리 치료 기관을 방문해 치료받으라고 권하기. 이 전형적인 처방에는 왜 부모(실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이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p.261

사회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강제되고 집행된다는 면에서 시집-며느리 관계와 엄마-아이 관계는 쌍생아처럼 닮아 있다. (....) 그 틀에 갇혀 살면서 우리는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게 된다. 때로는 다시는 가닿을 수 없는 상태까지 치닫기도 한다. -p.262

정말 좋은 엄마가 되려면 ‘좋은 엄마’가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30여 년 동안 엄마가 아닌 상태로 살아오고, 그에 따라 자기 고유의 성향과 습속과 역사가 형성돼 있고, 행복과 성과와 명예를 추구하고 싶은 한 인간이 자신의 여러 역할 중 하나로 ‘엄마’를 받아들인 상태가 있을 뿐이다. 엄마가 아이와 맺는 관계는 엄마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일부분이다. 다른 관계보다 더 가깝고 영향력이 클 뿐이다. 엄마가 자신을 둘러싼 우주와 연계를 끊어버리고 오직 엄마로만 기능하려고 하면, 아이와 우주의 관계도 끊어진다. (.....) 그러므로 좋은 엄마가 되려면, 그냥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내가 좋은 인생을 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 감정에 충실하고, 다른 이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면 된다. ‘엄마’가 나의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일 뿐, 나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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