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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24. 2018

우리가 여행기에서 기대하는 것

<언젠가, 아마도>를 읽고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를 읽었다. 론리플래닛 매거진에 5년 반 동안 연재한 글들을 묶어낸 여행 산문집이다.

재미있고 가볍게 잘 읽혔지만 한편으로는 김연수라는 이름값에 비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건 작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연재글을 묶어낸 책의 특성 탓이 더 클 것이다. 연재글이나 기고문은 분량 및 연재처의 분위기, 더불어 시류까지 맞추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인하여, 그 글을 모두 모아 책으로 엮어낼 경우 아무래도 흐름이 끊기고 이야기를 하다만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젠가, 아마도>에서 김연수는 고비사막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행지에서 느꼈던 경험과 생각들을 간략하게 풀어내는데, 오 맞아 맞아 나도 이런 적이 있었지 하고 공감하려는 순간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버릴 때는,  뭐랄까 위에 계단인 줄 알고 발을 디뎠는데 평지일 때의 기분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각 편의 분량 자체가 워낙 짧아서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맥이 끊겨버리는 기분 또한 어쩔 수 없다. 물론 매거진에 실렸을 때 실시간으로 읽었다면 어떤 여운과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한 편 한 편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하여간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주로 홀로 여행한 기억들에 대한 것인데, 뭐 한 것도 별로 없고 골목길 걷다가 술집에서 술 먹고 호스텔에 누워서 자고 그런 경험이 대다수이다. 그래서인지 어, 재미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그닥 들지 않는 동시에 홀로 여행하면 역시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 역시 홀로 여행했던 많은 날들을 김연수와 비슷하게 보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니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던 혼자 하는 여행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고독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실은 사람들이 여행 에세이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다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대리만족, 비슷한 경험에 대한 공감,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상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 이상으로 과거의 자신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고 마주하게 되는 것. 다시 혼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 언젠가, 아마도.

“그렇게 여행이 끝나 한국의 집으로 돌아오고,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나보다 수년은 늙어버렸으나 이따금 안개 속에서 거대한 뿌리 같은 형체를 드러내던 대성당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럴 때면 그 외로운 밤, 나를 위로해주던 여인의 목소리도 함께 생각난다. 안개에 가려졌더라고 그곳의 대성당은 굳건하게 서 있으리라. 아무리 형편없는 세상일지라도 서로 사랑하는 연인은 있으리라. 살라망카 대성당의 첨탑이 생각날 때면,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벌써 오래전에 살라망카를 떠나왔지만.” -p.161 <벌써 오래 전에 살라망카를 떠나왔지만>


“말하자면, 본래 지구는 외롭지 않다. 하지만 그런 지구가 문득 외로워질 때가 있으니 그건 내가 여행할 때다. 여행지에서는 언제나 ‘론리플래닛’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여행이란 본디 외로워지는 일이니까.” - p.225 <지구가 하나뿐이라 다행이야>


“기억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포토샵이 사진의 노출을 보정하듯 기억은 과거에 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 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흐릿하게 혹은 그 반대로. 그제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바라보느냐, 더 나아가서 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 점에서 누구에게나 삶은 잘 짜인 픽션이다.” - p.235 <사진으로 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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