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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ul 09. 2020

모든 섬세한 생명들을 위하여

<야생의 위로>

모든 섬세한 생명들을 위하여
 
페이스북에는 ‘과거의 오늘이라는 메뉴가 있다. 과거의 같은 날짜에 무슨 포스팅을 했는지 보여주는 서비스로, 아이들 아기  사진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과거의 흔적이 타임머신을 타고 눈앞에 나타나는   매일 두근거리는 심경으로 자정이 넘어가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왠지  일기장을 들추어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과거의 오늘을 꾸준히 들여다보다가 깨닫게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매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 오늘 짜증 나는 일이 있어서 그에 대한 포스팅을 적었다고 치면, 과거에도 마침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란 것이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혹은 비슷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먹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무언가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흡사한 생각들을 하면서.
 
일전에 이에 대해 포스팅을 하니 너도 나도 유사한 경험을  적이 있다는 댓글들이 달렸는데, 그걸 보면서 이것은 나만의 신기하거나 특이한 경험이 아니라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본래 인류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패턴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는 생각. 태초부터 유전자에 자연으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아들이는 방법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서 햇볕의 양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특정한 호르몬이 일정량 분비되고, 그로 인해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가설 아니라 어쩌면 합리적인 추론일지도 모른다. 철새들은 어떻게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까? 곤충들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모든 생명체마다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에 맞추어 생활 패턴을 바꾸어가며 지내는데 대형 포유류의 일종인 인간이라고 딱히 다를  없을 듯하다.
 
말하자면 지금처럼 상시 비슷한 생활을 유지할  있는 현대 사회에는 인류의 그러한 능력이 거의 퇴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수렵이나 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의 경우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해야만 했고, 한편으로는 그럴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죽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태생적으로 비가 오기 직전의 공기 냄새를 알고 있다든지, 식량이 떨어지는 것을 미리미리 대비할  있도록 겨울이 오는 신호를 진작부터 알아차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고 어떤 식물의 존재는  주변에 먹이가 풍부하다는 일종의 ‘신호로서 인간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감각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 이러한 생각 - 인간의 신체가 자연이 주는 신호를 아주 밀접하게 받아들이게끔 설계되어 있다는 – 바탕으로  우울증과 자연에 대한 기록이다. 식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25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던 섬세함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 역시 일종의 생명체로 간주하여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러니까 계절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의 정서나 신체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를 말이다.
 
10월부터 시작한 책은 겨울과 봄을 거쳐,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까지 도달하는 1  저자의 정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변의 환경에 따라 우울이 어떻게 경감되고 어떻게 극심해지는지를 담고 있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는 계절이 될수록 생명력이 희미해지는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처럼 저자의 삶에 대한 의지가 박약해지고 내면의 우울이 깊어지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저자뿐만 아니라 가을이나 겨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꽤나 보편적인 현상인데, 어쩌면  또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겪게 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원시시대에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살던 인간에게 겨울이란 여타의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몹시 혹독한 계절이었을 것이고, 그런 겨울을 앞두고선 두렵거나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므로. 당시의 습성이 오늘날까지 뇌에 각인되어 있다면, 해가 부족해지는 겨울에 뇌에서 자동으로 특정한 호르몬이 나오면서 우울한 감성에 젖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렇게 우울이 해일처럼 몰아칠 때마다 저자는 그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으로 향한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을 털고 일어나 숲으로 나가 식물과 곤충의 변화를 관찰하고, 새의 깃털이나 꽃의 열매를 수집하며, 바다에 나가 물소리를 듣는 등의 활동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러한 방법은 효과가 있는데,  또한 인간의 유전자에 남아있는 일종의 습성이 아닐까 싶다. 해가 짧아지면 겨울을 예감하고 두려움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침잠하듯이, 자연  어떤 생명체를 봄으로써 뇌에서 자동으로 행복을 느끼는 혹은 우울감을 진정시킬  있는 특정한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서늘해지는 가을마다 곧이어 필연적으로 닥쳐올 우울을 생각하며 두려워 떨면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다른 ‘생명체들을 관찰하며 꾸역꾸역 우울과 싸워나간다.
 
 기대 없이 표지와  소개만 보고 집어 든 책이었는데, 종합적으로 매우 흥미롭고 아름다운 독서 경험이었다. 저자가 직접 그리고 찍은 삽화와 컬러 사진들도 아름답고, 정서와 자연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 위화감 없이 서로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부분도 매우 인상 깊었다. 문장 역시 몹시 유려하고 아름다워서 읽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어느 공간을 산책하는 듯한, 그러면서 내면이 치유되고 마음이 안정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있었다. ‘치유 ‘힐링이런 단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단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저자는 자신처럼 근원을   없는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야생 자연에서 위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읽은 김에 어제오늘 아이들 등하교 길에 아파트 단지 안의 나무나 개미 같은 것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는데,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치유를 느꼈는지, 우울증을 경감시켰는지를 조금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어쩔  없이 살면서 여러 차례 허무를 경험하고,  살아야 하는지 혹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순간을 자주 맞이한다. 그럴  자연을 보게 되면, ‘라거나 ‘어째서라거나 등의 존재론적 질문 없이 그저 ‘살아 있다 사실만으로 묵묵히 계속해서 살아가는, 꿀을 나르고, 먹이를 운반하고, 짝짓기를 하고, 꽃을 피우고 하는 동식물을 보면서  자체로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치유’ 인지도 모르고.
 
가끔 근원을   없는 깊은 우울과 싸우느라 고통스러워하거나, 스스로가 너무 예민한  아닌가 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이들 읽었으면 싶은 책이다.

예민함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자주 부정적인 항목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사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지점, 일종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지점을 생각하면 매우 소중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기 직전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태풍이 오기 전의 공기의 흐름이 다른 것을 느끼는 것처럼, 어떤 위험이 닥치기 전의 신호를 다른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하고 반응할  있는 그런 능력이기에.

비록 본인은 그러한 능력으로 인해 신체와 정서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고통스럽고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진이 일어나기  가장 먼저 대피를 시작하는 동물들처럼, 그런 예민하고 섬세한 이들이 존재하는 까닭으로 인류는 지금까지 유지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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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평선에  닿는 동안 올빼미는 먹이를 물어뜯고, 나무와 산울티리에는 황금빛 후광이 내려앉는다. 평생 목격한  중에서도 손꼽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새삼 내가 우울증에 지치든, 얼마나 기만당하고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지든 간에 이런 광경과 만나고, 그에 따른 치유 효과로 머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계속 싸워나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p.112

우울증을 제어하려면 꾸준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연 속에서의 산책, 창의적으로 보내는 시간, 그리고 홀로 있을  곁을 지켜줄 호박색 털북숭이 친구라는 방어용 무기를 갖춘 일상적 전투 말이다. 일거리가 평소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가정사의 스트레스가 쌓여 나쁜 기운이 엄습할 때면 균형이 흔들릴  있다. 야외 활동의 유익한 효과가 사라지고, 우울증의 가차 없는 절망이 더욱 거세게 나를 흝는 것이다. -p.116

나는 한층 추운 나날이 다가온다는  알고 있으며 언제나처럼 겨울이 시작되는  두렵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은 올해 나의 부서진 정신을 치유해주었다. 3월의 가장 암담했던 ,  생각을 되돌리고 나를 자살의 목전에서 붙잡은 것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있던 은은한 초록빛을  묘목이었다. 지난 열두 달은 힘겹다 못해 비현실적이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지만, 정말로 쓰러질  같을 때마다 어느 새의 모습이나 숲에서의 짧은 산책이 최악의 우울증 증세를 피해   있게  주었다.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위안을 준다. 야생의 장소는 내게  필요한 약이자 안전망과도 같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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