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Nov 11. 2018

이토록 애틋한 연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고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었다. <일간 이슬아>를 인상 깊게 봤기에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선 바로 주문했다. 일간 이슬아는 올초 작가가 시작했던 월 구독료 1만원에 매일 한 편의 글을 보내주는 시스템으로, 지금은 이러한 방식으로 글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다. 물론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을 읽는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어서 구독은 한달만에 중지하게 되었지만.

짧은 만화 여러편과 그것을 좀 더 긴 말로 풀어낸 에세이가 번갈아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부모님, 그 중에서도 주로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가난했고, 그래서 국문과에 합격하고서도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고, 그대로 취직을 했고, 예쁘고 밝아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았고, 그러다가 직장에서 왜소하고 말수가 없는 웅이라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낳았고, 아이들이 좀 자라자 다시 일을 시작했고, 온갖 일을 전전하며 오늘에까지 이어온 엄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물론 그런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거나 칭송하고 있지는 않다. 책 속의 그녀는 매우 솔직하고, 까먹는 것이 많고, 재주도 많고, 그만큼 부족한 것 또한 많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나 역시 부모지만, 읽으면서 이런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대목이 많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통제하려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없다. 생활습관이며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일례로 아빠와 딸 아들이 맞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물론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딸과 맞담배을 피우는 아빠가 더 놀라울지도 모르겠다.) 딸이 누드모델을 하겠다는 이야기에도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누드모델을 하려면 뭐가 필요해?”라고 조용히 물어보기만 할 정도로 간섭과 참견을 하지 않는, 매우 ‘개방적인’ 엄마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우쭈쭈를 하거나 부모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녀를 한 명의 독립된 주체로서 신뢰와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라면 당연히 대단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인으로 자라날 수밖에.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그러한 면모가  많이 느껴진다. 섬세한 감수성 가운데 뿌리깊은 굳은 심지랄까.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복희’라고, 엄마의 이름을 정확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지칭한다. 작가에게 있어 엄마는 엄마인 동시에, ‘복희’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개인인 것이다. 읽다보면 엄마에 대한 딸의 깊고도 애틋한 사랑이 너무도 잘 느껴져서 마음이 마구 몽글몽글해진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곧 자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엄마에 대한 책이자 동시에 딸에 대한 책이 된다. 내가 딸을 가진 엄마라서 그런지, 엄마인 복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아서인지, 읽으면서 나의 엄마보다는 나의 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 해도 복희와 같은 엄마는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오늘 아이들이 놀고 있는 틈을 타 이 서평을 썼다. 다 쓰고 가보니 딸이 욕조에 매직으로 낙서를 하고 아끼는 향수를 세 통이나 부어놓았다. 조용할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복희였다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잠시 생각했다.

“한동안 복희를 쓰지 못했다. 그간 복희에 관해 내가 쓴 모든 글이 별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유독 최상급 표현을 남발하고 말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복희에 대한 글을 쓰고 만화도 그렸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그 모든 자료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고 싶다. 다시 한다면 더 잘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필연적으로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본다.” -p.48

“복희는 늘 조금 늦었다. 그녀가 시야에 나타나기 직전까지 난 그녀를 죽도록 미워했다. 혹시라도 안 올까봐 미리 미워하느라 마음이 지쳤다. 복희는 뭔가를 자주 까먹는 엄마였다. 1학년인 나의 신발주머를 챙겨주는 일이나 내 생일이나 내 나이 등을 왕왕 까먹었다. 핸드폰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오늘이 운동회라는 걸 그녀가 까먹었을지 도 몰라서, 모든 애들이 부모랑 밥을 먹는데 나는 아무랑도 먹을 사람이 없을까봐 울먹거리며 복희를 기다렸다.” -p.95

“산악 바이킹을 한참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엄마가 걱정할 게 분명했다. 나는 속도를 내서 산장으로 향했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해가 졌다.
첩첩산중을 한참 헤매고 나서야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산장에 도착했다. 마당에 오토바이를 대자 산장 주인이 나와서 말했다.
“유어 씨스터 겟 아웃 히얼. 쓰리 미닛 어고.”
씨스터는 물론 엄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 오 분을 달리자 어깨가 작고 엉덩이가 오리 궁둥이인 여인이 저 앞에 보였다. 내가 소리쳤다.
“엄마!”
뒤돌아보는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별 상상을 다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자식을 키우는 건 영원한 짝사랑이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를 태우고 달렸다. 엄마가 내 허리를 꽉 잡았다.” -p.248-249




매거진의 이전글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는 사람들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