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다음 혁명을 읽고>
<좋아하면 울리는>은 반경 10미터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울리는 ‘좋알람’이라는 가상의 어플을 소재로 한 천계영의 웹툰이다.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 같기만 하던 좋알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국민의 필수 어플로 자리잡는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그렇게 건강정보나 날씨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기능의 하나로 자리잡은 좋알람은 기술 발전을 거듭하여 어느 순간 혁신적인 신기능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는데, 다름 아닌 ‘미래에 당신을 좋아할 사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를 좋아하게 될 사람이라니!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될 사람이라니! 지금처럼 번잡스럽게 갈등하고 고민하고 밀고 당기고 썸타고 할 필요 없이 운명의 상대를 직접 알 수 있게 된다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동시에 혁신적인 시스템인가. 물론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의 애달픔과 설레임으로 인한 흥분은 사라지겠지만. 근데 과연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당시에는 재미있게 보면서도 저게 말이 돼? 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는데(어차피 만화는 만화일 뿐이므로 진지하게는 아니지만), 요즘 같아서는 이런 일들이 실현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올 봄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데이팅 어플을 테스트 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11월인 현재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봐 아직까지도 테스트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페이스북 자체가 애초에 타인의 얼굴을 평가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데다가, 채팅 사이트를 포함하여 광의의 의미의 데이팅 어플이야 과거부터 지금까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이팅 어플 없이도 페이스북에서 만나서 사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읍읍) 거기에 하나가 추가된다고 해서 뭐.
그러나 현 시점에서 페이스북 버젼의 데이팅 어플은 다른 뻔한 것들과는 어쩌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조건이나 외모 등의 ‘선호‘를 넘어서 어쩌면 실제로 나를 좋아할 사람, 내가 정말로 좋아하게 될 사람을 소개시켜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좋알람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사기를 칠 사람을 판별해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가능하느냐고? 가능하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에는 ‘데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창에 어떤 검색어를 넣었더니 다음 순간 바로 페이스북에서 해당 상품의 광고가 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에 특정 단어가 들어간 포스팅을 하면 이어서 바로 관련 광고가 등장한다. 이처럼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취향, 선호도, 관심사를 파악하여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데이터의 주인인 사용자에게도 끊임없는 피드백을 제공한다. 가끔씩은 대체 내가 이 생각 하고 있는 것 어떻게 알았지 싶은 상품 광고나 관련 게시물들을 검색하기 전에 ‘먼저’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모른다. 여행갈 때 읽지도 않을 책을 잔뜩 챙겨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데이터라면? 내가 해왔던 무수한 선택의 누적물, 내가 해왔던 찰나의 망설임들을 모아 과학적인 분석을 거쳐 결과값을 정밀하게 도출해낼 수만 있다면? 컴퓨터가, 즉 데이터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세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미래이다. 데이터를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상상만 해오던 거의 모든 것들이 현실화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요즘 들어선 많은 기업이 이러한 데이터를 향후 어떻게 다루고 경제적으로 연결시키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데이터, 그것을 저장할 공간(클라우드), 그리고 그것을 처리해낼 상당한 컴퓨팅 능력을 필요로 한다.
왕젠의 <온라인- 미래 혁명>은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거기 소요되는 비용과 인프라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책이다. 그는 미래 산업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앞으로의 비즈니스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한 심도있는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책에서 왕젠은 데이터를 석유 등의 자원, 인터넷 및 클라우드 컴퓨팅을 전기에 비견하여 설명한다. 그는 과거에 공장별로 보유하던 발전소가 합쳐지면서 국가적인 전기 인프라가 되었듯이, 그리고 그러한 전기 인프라가 확보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업 발전이 일어났듯이, 현재와 같이 기업별로 클라우드 컴퓨팅을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형태는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지속될 수 없는 미래라고 지적한다. 미래에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기본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한한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공공서비스의 개념으로 인식하여 전기처럼 저렴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 인프라가 확보되면, 대기업이 아닌 1인기업이라도 엄청난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동시에 왕젠은 데이터는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며, 이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데이터 그 자체를 폐쇄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인터넷은 기존의 인터넷과 다르다. 다른 것들과 연결된 ‘온라인’ 상태이어야만이 진정한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바라보는 비즈니스적인 시각을 배움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읽다보면 요즘의 인터넷은 마치 전기나 물처럼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자원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IT 업계 종사자는 물론, 정책 결정자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이다. 문장이 다소 딱딱하여 읽는 재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지식과 시야를 전달하고자 하는 본연의 목적에는 굉장히 충실하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짤 중에 이준석씨가 “여러분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인터넷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나 키보드 워리어들을 비웃을 때 자주 인용되고는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틀렸다. 세상은 키보드 안에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즘은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도 실물을 확인한 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가구나 전자제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인가, 오프라인으로 구매한 것인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향후 몇 분 뒤 도착할지 알려주는 것 또한 인터넷과 데이터의 힘이다.
우리는 이처럼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동시에, 온라인과 데이터가 일상생활 곳곳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향후 인터넷 사업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요즘 보면 인터넷에 과하게 의존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며 디지털 다이어트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요즘 세상에서의 디지털 다이어트는 마치 문명을 거부하고 산골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처럼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거부감, 죄책감을 갖는 대신, 이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어떻게 현명하게 적응하며 살아남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다”고 말한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아니오, 세상은 키보드(인터넷)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