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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29. 2018

마약에 관한 모든 것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읽고

흔히 기상천외하거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보고 “약 빨고 만든”이란 표현을 쓴다. 평범한 능력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는 뜻인데, 실은 예술가들 중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진짜로 약을 빨았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일례로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무려 6일동안(!) 코카인을 흡입한 끝에 해당 작품을 집필했다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만 하더라도 마약이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아플 때 먹을 약이랄 것이 따로 없으니 자연스레 대마나 아편같은 천연마약을 진통제나 약으로 활용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당대의 프랑스에는 무려 하시시(강력한 대마) 클럽까지 있었다. 대표 회원으로는 유진 들라크루아,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구스타브 플로베르, 샤를 보들레르 등등. 그 놀라운 예술작품들이 모두 약의 결과라니....나도 약 한 번 빨면...응 아니야.

이렇듯이 마약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정부의 제재와 관리를 받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마약은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끌려갈 것 같은 무시무시한 인상을 주는 덕에 늘 터부시 되어 왔으며, 더군다나 한국은 약물이 특히나 엄중하게 다루어지는 사회이기에, 그토록 위험하다는 마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정작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지. 네이버에 마약 종류라고 검색할 경우 아래와 같은 메세지가 뜬다....




오후의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는 이처럼 막연한 공포와 거부감, 일말의 신비로움 속에서만 존재하던 마약에 대하여 샅샅이 알려주는 책이다. 그 기원과 역사는 물론, 대마부터 LSD까지 온갖 마약의 종류, 마약을 둘러싼 각종 논란까지 폭넓게 다룬다. 그 중에서도 마약 관련한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특히나 흥미롭다. 1954년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 선수들이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복용하고 경기를 뛰었다거나, 교황 레오 13세가 코카인이 들어간 포도주 마니아라서 해당 포도주에 금메달까지 수여했다거나, 프로이트가 코카인 중독자였다거나.

한 때 필로폰이 일본에서 영양제처럼 소개되어(히로뽕) 수많은 중독자를 낳았듯이 과거 우리나라에도 메타돈이라는 영양제로 인한 중독자가 무려 100만명에 달했다는 것 또한 책을 읽고서 알게 된 사실이다. 마약 청정국인 줄 알았던 한국에 약물중독자가 100만명이나 있었다니. 소재 자체가 자극적인데다가, 호기심을 만땅 충족시켜주는 내용이고, 더군다나 작가의 글발이 엄청나서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합법적으로 마약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며 ‘음악’을 들으라고 소개하는 클라스!))

마약은 실생활에서는 접하기 어렵지만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꽤나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인데, 그간 영화에서 밀가루 같은 걸 손으로 찍어서 먹어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걸 봐도, 저게 헤로인인지 코카인인지 필로폰인지 뭔지, 그걸 손으로 왜 찍어먹는지, 먹으면 뭘 좀 아는지, 미간은 왜 찌푸리는지 전혀 감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런걸 이해해서 어따 쓸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지만. 마약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을 볼 때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마약의 비범죄화를 둘러싼 논란 또한 꽤나 깊이 있게 다루는데, 막연히 마약은 무조건 안돼지! 라고 생각해왔던 사고를 깨주는 참신한 내용이었다. 우리는 흔히 마약을 인생이 파괴되는 첩경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사람들이 마약을 했기 때문에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몰락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마약을 범죄화 함으로써 마약자체가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는 미국의 “금주법”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과거 금주법이 시행되자, 범죄조직들이 술을 유통하면서 술이 지하경제에 편입됨으로써 오히려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개인이 몰래 생산하는 술 또한 규제 없이 마구잡이로 만들어지다보니 안전이나 위생 등이 검증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마약 또한 마약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불법으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범죄에 이용되기도 하고, 불순물이 섞인 마약을 하여 문제가 되거나 농도(?)를 착각해서 과잉 흡입하여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마치 주량이 소주 1병인 사람이 10병을 한꺼번에 마셨다가 사망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글쓴이가 마약을 권장하거나, 마약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결국은 어떻게 하면 마약으로 인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더 가깝다. 물론 글쓴이의 경우 마약(아마도 소프트 드럭) 비범죄화를 주장하고 있기에 자료를 아마도 선택적으로 차용한 부분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적어도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분명하다. 지식적인 부분(?)도 충족시켜 주면서 재미까지 있는데다가 이처럼 고민을 던져주기까지 하니 추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책.

아, 참고로 합법적으로 마약을 즐길 수 있는 방법 중에는 ‘상추’도 있다. 흔히 상추 먹으면 졸립다고 하는데 상추 줄기 끝 부분에 있는 특정 성분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따라서 상추 잎 100장 정도를 모아서 줄기만 따서 그 즙을 모으면 마약을 만들 수 있다고! 혹은 두꺼비나 전갈의 독을 이용해도 된다는데.....귀찮아서 못하겠다.


제가 바라는 건, 지금 우리가 담배와 술의 장단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듯이, 대마초에 대해서도 장단점을 알고 난 뒤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니라요. -p.163

술을 마시는 전체 인구에 비하면 알코올중독자는 아주 적죠. 마찬가지로 마약 사용자 중 마약중독자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마약 사용자는 마약을 한두 번 해보고 말거나 오락용으로 간간이 사용할 뿐, 중독 증상을 크게 겪지 않아요. -p.166

프렌치 커넥션을 계기로 미국에 헤로인 문화가 완전히 뿌리내리게 됩니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는 더 강경한 마약금지 조치로 시민들을 탄압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재편하기
위해 마약밀매를 묵인하는 이중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합니다. -p.182

많은 사람이 네덜란드의 마약정책에 대해, ‘효율을 위해 도덕성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떠들지만, 제가 볼 때 이는 네덜란드에 대한 악의적 비방에 가깝습니다. 네덜란드의 마약정책은 효율이 아니라 인권을 중시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거죠. 마약에 대한 네덜란드의 기본 태도는 ‘전쟁’이 아니라 ‘해악 감소(해악을 최소화하자)’입니다. -p.222

대부분의 마약 관련 범죄는 마약을 금지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단순히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p.225

(성매매, 마약과 같은 지하경제를 GDP에 적용할 경우) 유럽 GDP는 수치상 평균 2.5퍼센트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 네덜란드는 마약과 성매매를 포함할 경우 늘어나는 GDP가 0.4퍼센트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낮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평균 2.5퍼겐트 상승, 영국은 무려 5퍼센트가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는데, 네덜란드는 0.4퍼센트. 그만큼 지하경제에 유입되는 돈이 적다는 뜻이고, 이는 결국 다른 나라보다 어둠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 적다는 겁니다. -p.226

다시 한 번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중간 정리를 하자면, 마약을 합법화하자거나 비범죄화하자는 주장이 ‘마약이 안전하다’라든지 ‘마약은 개인의 자유’라든지, ‘마약 사용자를 그대로 방치하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연 강력한 금지 정책과 통제된 허용 정책 중에 어떤 방법이 장기적으로 마약 의존지를 줄이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따져보자는 거죠. -p.226

결국 마약 사용량을 낮추는 건 국가의 마약정책이 아니라 그들의 경제와 복지 수준이라는 이야기죠. 즉, 미국보다 네덜란드가 마약 사용률이 낮은 건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미국보다 네덜란드가 빈부격차가 작고 복지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p.231

마약 사용자가 수치적으로 줄어드는 것과는 별개로 네덜란드의 마약 정책은 마약 사용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p.232

한국은 치안이 좋은 국가이고 슬럼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뒷골목처럼 무법천지가 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은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 넘치는 장작에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타버릴 수도 있어요.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마약정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마약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죠.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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