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Nov 28. 2018

작가들의 작가

<대성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대성당>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작으로, 둘 다 전문번역가 대신 그를 좋아하는 소설가들(김연수, 정영문)이 직접 번역했으며, 단편집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콩트라고도 불리는 엽편에 더 가깝다. 250페이지 내외에 17편의 글이 실릴 정도이니 얼마나 짧은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한 편의 분량이 10페이지 미만인 것도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보통 인상적인 구절이라든가 그 책의 주제를 대표할만한 문구를 메모하곤 하는데, 레이먼드 카버의 책에서는 단 한문장도 추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굉장히 짧은 단문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감정적인 서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지시문과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희곡같기도 하다. 인물은 식탁에 앉는다, 물을 마신다, 냉장고를 연다, 전화를 건다, 상대를 응시한다 등의 단순하고 짧은 묘사 안에서 움직이며 인물들간의 대화 안에도 불필요한 정보가 거의 없다.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인물들과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도 인상적이다. 화려하고 특별한 장면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산책을 하고, 운전을 하는 그런 일상의 장면들이다.

또한 일반적인 단편들이 긴 이야기를 짧게 압축시킨 듯한 느낌이라면, 카버의 이야기들은 어떠한 장면이나 특정한 분위기를 포착한 것에 더 가깝다. 서사는 기-승-전-결의 친절한 구조로 전개되지 않고, 기-승, 또는 승-전 등의 일부분만 드러난다. 즉 단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인 것인데, 왜 그를 단편문학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처럼 고도로 절제되어 있고 압축되어 있는 서사, 더 이상 줄일 수 없을만큼 간결한 문장 속에서 삶의 비극, 일상 속의 부조리, 인생의 쓸쓸함 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극치, 50년도 더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올드하게 다가오지 않고,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을 읽고서 확실히 ‘작가들의 작가‘는 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뛰어난 작가와 ‘빻은’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