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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09. 2019

행복해지기보다 불행해지지 않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대학 때 교지편집부 활동을 했었다. 수습위원이던 1학년 시절, 8명 가량 되었던 동기 중에 나를 무진장 싫어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문제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더란 것이다. 물론 사람 좋아지는데 이유없고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데도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당해보면 이게 신경이 은근히 매우 많이 쓰인다. 미움을 받는 그 자체보다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을 때의 불편함. 차라리 속시원하게 “너 너무 잘난척 해!” “그냥 생긴게 재수없어!” 라고 하면 어디서 개가 짖나 하고 그냥 넘겨버릴텐데 말이다.

하여간 나에 대한 원한이 어찌나 깊었는지, 후에 들어보니 뭐 나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느니, 내가 분위기를 망친다느니, 자신을 괴롭혔느니 어쩌느니 온갖 욕을 다 하면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고만 뚜껑이 열렸지만 그래봤자 이미 그만두고 나간 후라서 어쩔 도리는 없었다. 하여간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내가 뭘 어쨌다고....하는 억울함에 찾아가서 한판 붙을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자신의 전공을 무시한 적이 있었다고, 그 때문에 너무나 모욕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고.

으음....듣고보니 그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철학과였는데, 아주 아주 오래전에 스치듯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와, 철학과라고? 난 철학은 너무 재미없고 어려워서 그런거 배우는 사람들 너무 신기해.”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무신경하고 사람에 따라 모욕감을 느낄만한 발언이지 싶다. 무례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뒤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고 사람을 모함할만한 정당한 사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달콤한 인생이야 뭐야.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하여간 지금도 개념이 없지만 20살 때는 지금보다도 개념이 없었기에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어떠한 흥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당장 근대 미국 소설이나 영국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의미도 모르겠어서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철학을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알게 뭐야. 물론 당사자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잘했다는 뜻은 절대 아니고.

뜬금없이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김영민 교수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미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칼럼으로 전국구로 유명해지시고 각종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책이지만,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재미있는 유머를 찾아 이 책을 펼쳐든 사람들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단순한 에세이나 칼럼을 모아놓은 것보다 철학서적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후에 보니 학부 전공이 철학이셨다고.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이 책은 두 번이나 읽었다. 어려워서.

문장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단어로 씌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장들 하나하나는 쉬운 편에 가깝다. 다만 글 한편 한편에 녹아있는 사유의 깊이와 그것을 이해하고 소화하기까지의 과정에 꽤나 시간이 걸린다. 읽다보니 20살 무렵 그토록 개념없이 내뱉었던 말이 떠올리면서 낯이 뜨거워지고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철학을 공부해야하고,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며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삶에 대한 불안함, 허무함, 존재의 의미에 대한 호기심, 외로움, 고독, 고통,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인간이 알고 싶고 추구하고 싶어하는 생의 비밀을 푸는데 철학이 주요한 열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이 책에 실린 것 중 가장 많이 알려지고 인기 있는 글은 역시나 <추석이란 무엇인가>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와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란 글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래도 신년이 된지 얼마 안되었고, 어느새 자꾸 자꾸 흘러가는 시간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나이가 된 상황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살다보면 때때로 허무와 고독, 미칠듯한 외로움과 우울한 감정이 폭포처럼 밀어닥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어줍잖은 힐링 에세이를 읽으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하기 보다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할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나면, 이미 우리는 죽어가고 있고,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면, 그 모든 감정들은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니까.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불행하지 않게 사는게 훨씬 더 어렵다는 대목에서 역시 많은 공감을 했다. 나 역시 거창한 행복보다 소소한 근심을 하며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목표다. 만화책 <먹는존재> 절판되었다....냉동실에 쟁여놓은 맥도날드 라즈베리 파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같은 것을 생각하는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가.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p.5, 서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p.22-23,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없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p.23,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정 단계, 시간의 몰매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나마 바로 이 순간이 남아 있는 나날 중에서 가장 젊고 좋은 때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길거리 인파에 섞이지 말자. 재미없는 건배사를 남발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자. 새해의 운세, 새해의 사자성어 같은 신문 기사를 읽지 말자. 버려진 놀이공원 같은 데 혼자 가지 말자. 대신 자신의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을 찾아 고양이처럼 웅크리자. 오래전 지구를 호령했지만 지금은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거대 공룡을 생각하자. 탐사선이 보내온 무심한 우주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을 추구하는 존재의 모순을 껴안고 애무하자. -p.28-29, 시간의 흙탕물 에서 시야의 확대가 따르지 않는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확대된 시야 없이는 상처를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아무리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도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다 없다.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다.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p.37, 성장이란 인가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p.318, 책이란 인가 우리는 권력을 싫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권력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무작정 싫어할 게 아니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p.325, 행복보다 소소하게 불행한 삶을 꿈꾸 이유 책을 출판하면, 독자들이 너무 그럴싸한 메시지를 책에서 읽어낼까 두렵습니다.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그러한 책들의 주장에는 특히 확신이 없거든요. 그런 책들은 확신할 근거가 없는 것들까지 확신하기에, 그런 책들을 확신할 수 없죠. 저는 차라리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큰 고통 없이 살아가기를 원해요. -p.340,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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