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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08. 2019

무고한 희생자인가, 사악한 설계자인가

<그레이스>를 읽고

184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그레이스 마크스라는 15살짜리 소녀가 자신의 고용주와 그 집에 살던 또 다른 하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살해된 하녀는 임신한 상태였고, 집주인은 또 다른 살인 용의자인 하인의 셔츠를 입은 채로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범인들의 어린 나이, 사건의 잔혹함, 독신이던 집주인과 임신 상태이던 하녀 등 선정적이기 이를데 없는 요소가 가득한 이 사건은 당시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그런 와중에 하인인 맥더모트는 그레이스가 집주인인 키니어를 사랑하고 임신한 하녀 낸시를 질투하여 그 둘을 죽여달라며 자신을 꼬드겼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레이스는 맥더모트에게 만약 자신을 돕지 않으면 너 역시 죽이겠다며 협박을 당했다고 이야기한다. 두 명의 피해자와 두 명의 용의자, 서로 상반된 주장. 누가, 누구를, 왜, 죽였을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실존인물이던 그레이스 마크스를 다룬 책 - 주로 맥더모트 쪽의 주장과 결이 일치하는, 그레이스를 욕망이 넘쳐나는 마성의 소녀로 바라보는 -을 읽고 드라마의 각본까지 썼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레이스에게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새롭게 소설을 쓴다. 그것이 <그레이스>이다. 애트우드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알게된 많은 ‘기록’을 거의 각색 없이 그대로 차용했다고 밝힌다. 물론 얼마 안되는 그 기록이라는 것 자체가 맥더모트와 그레이스의 주장처럼 상반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대체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진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함과 초조함을 안고 책을 읽어나갔으나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여전히 그레이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콕 집어 답하기 어려운 기분이 든다. 무지한 희생자인지, 사악하고 교활한 범죄의 설계자인지. 사실 컵을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전에 누군가 글쓰기를 건축에 빗댄 것을 두고 참으로 공감을 했는데, 애트우드는 그 방면에서 참으로 꼼꼼하고도 성실한 건축가라고 할 수 있겠다. 결코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소설이 아님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야기의 밀도나 농도, 감정의 결이 상당히 촘촘하여 꽤나 공들여 읽어야 한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계급을 막론하고, 거의 자유의지랄 것이 없었던 여성들의 삶을 보다보면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시대상, 하녀들의 생활, 의복의 양식, 문화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과거의 위생습관은 여러 책에서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 서너달에 한 번씩 머리를 감았다는 부분에서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책장을 통해 냄새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 매리는 머리도 감으라고 했어요. 머리를 너무 자주 감으면 기가 빠져나가는 게 사실이고 그 바람에 기운이 다해서 죽은 여자아이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서너 달에 한 번씩은 감아 주어야 한다면서요. -p.226 나는 계속 문 뒤에 꼼짝 않고 서 있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안 돼, 안 돼, 안 돼.
간다. 너 잡으러 간다. 너는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한 적이 없어. 이 망할 것. 이제 혼쭐나야 해.
이건 내 잘못이 아닌데. 이제 어떻게 하지, 어디로 피하면 까?
잠갔던 문을 열어야 해, 창문을 열어야 해, 나를 들여보내 줘야 .
저것 좀 봐. 찢어진 꽃잎들 좀 봐. 너 무슨 짓을 한 니?
내가 잠이 든 것 같다.  -p.437 이야기 한가운데 자기 자신이 들어가 있으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난장이다. 음울한 포효,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깨진 유리와 갈라진 나무의 잔해.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집 혹은 빙산에 부딪히거나 급류에 휩쓸려서 승선한 어느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는 배처럼 그러고 난 다음에야 이것이 이야기 비슷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누구에게 이것을 들려줄 때. -p.438 이 퀼트 패턴은 이름이 ‘천국의 나무’인데, 우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똑똑한 여자였던 것 같아요. 성서에서는 ‘나무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생명의 나무’와 ‘선악과나무’, 이렇게 두 개의 다른 나무가 있다고만 하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무가 한 그루뿐이고 생명 나무 열매와 선악과가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걸 먹으면 죽지만, 먹지 않아도 죽긴 마찬가지예요. 그걸 먹으면 좀 더 유식해져서 죽는 거.
그런 식이 되어야 인생살이와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선생님께만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게 정설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p.668-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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