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승혁 Nov 28. 2015

달나라는 없다 '난쏘공'의 후일담 '투명인간'

언문독해 하나, 소설가 성석제의 투명인간

*언문독해 하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성석제의 '투명인간'

강남 성모병원과 센트럴시티 사이에는 거대한 육교가 하나 있다. 서귀포에서 제주에어를 타고 김포로 날아온지 이틀 째 되는 날, 한 후배와 그곳을 건넜다. 서울에 젖어 살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투명인간이 그날 육교에선 생생하게 보였다. 제주에는 없고 서울에는 있는, 영하의 온도를 견디며 엎드려있되 보이지 않는, 파란 겨울날의 하얀 입김보다 투명한 그가 어쩌면 성석제가 만난 '만수'일지도 몰랐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두들 짐짓 시선을 피해 머릿속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새까만 점퍼를 입고 육교에서 구걸하던 그는 분명히 투명인간이었다. 아무도 그를 본체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괴롭혀온 것은 알려진 대로 ‘빈곤’이란 질병이다. 이 질환은 단순히 경제적 결핍이란 증상만을 갖지 않는다. 관계의 결핍은 빈곤의 또 다른 증상이었다. 둘은 하나의 순환고리로 이어져 경제적 궁핍은 관계의 결핍을, 관계의 결핍은 다시 경제적 궁핍을 산출하고 강화했다. <한겨레21>은 지난주 서울의 한 영구임대주택 단지를 찾아 어둡고 습한 침묵의 공간 속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을 만났다......." 2012.09.21/한겨레21


'빈곤'이란 질병을 앓고서 '유령'으로 변해버린 사람이 있었다. 아니 유령이라는 호칭마저도 과분해서 성석제는 '투명인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마땅히 투명인간이 겪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했겠지만 성석제는 달랐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투명인간이 되는가. 오래된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다가 종국에는 투명해져버린 만수. 소설<투명인간>은 만수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투명인간'이란 신종 질병에 대한 꼼꼼한 르포다.  


서울 강남 구룡마을



'난쏘공'의 후일담 '투명인간'


70 년 대. 은강그룹의 지옥같은 공장에서 끝없이 일했던 영수와 영호. 강제로 헐린 집의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순결까지 포기한 영희. 만약 <난쏘공>의 주인공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그들은 아마도 투명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만수네 가족이 곧 난쟁이네 가족이다. 중요한 것은 만수네냐 난쟁이네냐 하는 구분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를 관통하며 온 몸으로 격변을 감내해온 모든 사람들과,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가족으로 시작해서 개인으로 끝났다. 아주 부유한 사장님이 소유한 지옥같은 공장에서 영원처럼 일했다. 누군가는 사육장에서 가축처럼 일하는 게 싫어 사장님들에게 노동법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지만 되려 범법자로 낙인찍혀 감옥에 들어갔다. 그 모든 게 소설이라기보다는 현실이었으므로 작품의 핍진성은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진저리나는 핍진성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는 '달나라'를 그렸다. 난쟁이들만 사는 천국을 꿈꿨다. 거인들이 난쟁이를 때리지 않고, 짓밟지 않으며, 부자도 사장님도 경찰도 없는 세상. 비록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지구와 달 사이만큼이나 멀지만 아무튼 내일은 달라질 거란 미묘한 기대가 묻어있었다.


▲조세희 작가


"30년 전 '난쏘공'을 쓸 때 미래에는 이런 슬픔, 불공평, 이런 분배의 어리석음이 없기를 소망했어. 말하자면 '난쏘공'은 벼랑 끝에 세워 놓은 '주의' 푯말인 셈이야.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뜻이었는데…, 21세기의 어느 날에 더 끔직한 일이 생겨버렸어." 2009.01.22/용산참사 직후 조세희 작가


그러나 달나라는 없었다. <난쏘공> 이후는 달나라가 아니라 <투명인간> 이었다. 모진 산업화시대를 견디고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만수'와 그의 가족들은 더 비참해져갔다. 한 때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철원'은 소련이 몰락한 이후 시대감각을 잃고 낙오했다. 철원과 함께했던 옥희는 부동산 투자에 몰두하며 오로지 돈만 쫓았다. 회장의 횡령과 배임으로 인해 부도난 공장을 끝까지 지켰던 만수 역시 처절하게 몰락했다. 채권단이 불법점거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걸자 천문학적인 빚을 지게 된 것이었다.


난쏘공이 상상하지 못한 미래는 바로 지금이었다. 한 때 지식인이었다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노동자가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행사하면 법원에 의해 손해배상을 명령받는 세계. 실제로 쌍용차 노조원들은 쟁의를 했다는 이유로 무려 47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명령받고, 전 대통령은 세금을 빼돌려 자기 집을 사려다 걸렸다. 심지어 청문회에서는 장관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해명하며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사람에 의한 독재가 끝나자 돈에 의한 새로운 독재가 시작된 것이었다. 돈이 곧 생명인 세상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점차 희미해져갔다. 양재천 건너 타워팰리스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반짝거렸고 그 아래 구룡마을은 얼마나 투명한지 보이지도 않았다.


▲"나 투명인간. 안 보이지?"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투명인간이었다
p363

 

만수는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빈곤이라는 질병을 앓고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올림픽을 맞아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초가집을 전부 밀어버렸던 전두환은, 그러니까 다음 독재자가 돈이란 걸 미리 알아챘던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 권력자들은 초가집을 밀어버리는 방식 가난을 지우진 않는다. 조금 더 세련돼 졌달까. 지금의 정부는 기초생활부정수급자를 단속해야한다고 부르짖으며 가난을 자연스레 범죄와 연결지었다. 당연하게도 가난을 범죄로 치환하면 가난한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기는 훨씬 수월해진다. 부자들은 이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가난한 애들은 멍청하고 폭력적이니까 우리 애들 다니는 학교로 와선 안 돼."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살인을 저지르니까 추방해야돼." 빈자는 곧 범죄자이므로 격리하고 추방해야될 존재가 되었다. 점점 더 투명해져갔다.


만수를 들이받은 것은 낡고 커다란 승용차였다. 운전자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었다.
...(중략)...
무슨 일 있어요?
368p


만수는 차에 치여 죽었다. 투명인간을 받은 운전자는 이상한 이물감만을 느꼈을 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고서도 시치미를 뗄 수 있게 되었다. 못 봤으니까.그들이 투명하니까. 송파 세 모녀가 가난에 목숨을 끊자 해당지역 복지 담당자가 말했다. 그들이 긴급지원을 신청 안 했다. 나는 몰랐다. 투명인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노인들이 고독사하자, 정부에서는 노인에게 스마트워치를 채워 구청에서 바이탈사인을 체크하게 하는 걸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체가 되어서야 만나러 가겠다는 것이다.용산 재개발 구역에서, 쌍용차 공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되어 차에 치이고 있다. 그 때마다 세상은 그저 ‘덜컹’하는 이물감만 느낀 채,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며 합리화하면서,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무슨 일 있어요?”



* 성석제 '투명인간' 소개기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