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승혁 Nov 30. 2015

김연수. 부끄러운 문장, 가벼운 마음

 언문독해 둘. 소설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언문독해 둘. 소설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2014.12.10 제주도에서)



"나는 인생의 불행이 외로움을 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불행은 불량한 십 대들처럼 언제나 여럿이 몰려다니죠." 82p


 어쩔 수 없다고 변명부터 하고 싶다. 불행이 아니면 내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마지막에 최면술사에게 모든 일을 망각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니까 망각이다.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오늘이 먼 과거가 되면 된다. 그뿐이다. 나는 깊은 철학적 사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냥 잊기만을 바란다. 누구와는 헤어지고 누구는 쓰러지고 돈은 없고 독촉은 끊이지 않고 나는 무력해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거다. 클리셰로 뒤덮인 신파에 진짜 사람이 빠질 수도 있는 법이다. 노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물처럼 살아진다. 그냥 그러려니 하지 않고 이 풍랑에 맞서다가는 죽기 딱 좋다. 나는 떠나고 싶어 떠난 게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어서 떠났다. 최대한 한강이 없는, 한강의 다리들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가야만 했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여기에서는 약 없이도 잠을 잔다. 오늘은 좀 모르겠다.
 

이것은 책이다


 여기서도 가끔 희망에 대해 생각한다. 유치하지. 참 유치하다. 비웃음을 살만 하다. 오늘 읽은 소설에서 '지은'이란 소녀가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는 아버지에게 손전등을 이용해 HOPE라는 글씨를 보낸다. 살아서 돌아오란 뜻이다. 아버지는 자살한다. 그러니까 그런 게 일종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서사적으로 일관성 있게도 지은이란 소녀도 자살한다. 검고 축축한 바닷속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심청전처럼 아버지가 눈뜨고 소녀가 뭍으로 올라오는 기적은 없다. 그냥 죽는 거다. 하릴없이.
 

2014년 12월 10일 제주도 가파도


 가파도에서 자전거를 탔다. 해안도로와 갈대숲을 달렸다. 방파제에 부딪힌 비릿한 포말이 바람에 날려 옷을 적셨다. 가끔은 망각을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겨울 바다를 보는 순간이 있다. 설원에서 망각의 주문을 들은 오대수처럼 히죽거리기도 한다. 다 그뿐이다. 결국 아무것도 털어내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써내게 되어 있다. 엉망진창 얽혀버린 감정의 끈을 와구와구 풀어내는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손톱 참 예쁘게 깎았다


 아버지가 목을 매고 지은이는 투신했다. 갓난아기인 지은이의 딸은 해외로 입양됐다. 미국에서 카밀라라는 이름으로 키워진 지은이의 딸은 자기의 뿌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고 결국 과거의 모든 일을 알게 된다. 희망을 쏘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죽어버린 비극의 끝에 카밀라는 태어났다. 어둠이 일렁이는, 지은이가 투신한 밤바다를 보며 카밀라는 차라리 진실을 몰랐으면 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카밀라는 무얼 했을까. 글을 썼다. 펜대를 잡고 매일 세  쪽씩 백지를 채웠다. 막막하면 막막한 기분을 썼다. 흰 종이에 속을 다 내려놓고 나면 정말로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딱 내려놓은 만큼.


마그리뜨 그림 같다


"어떤 감정이나 평가 없이 내 생각들을 글로 쓸 수 있게 됐다. 거기에는 걱정도 있었고, 희망도 있었다.
부끄러운 문장도 있었고, 나마저 속이는 문장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다 받아 적었다.
해야 할 일도 적었고, 다짐도 적었다. 세 장을 모두 채우고 나면 팔이 아팠지만,
텅 비워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56p


 박완서 선생님은 글을 쓰면서 치유되었고 자유를 느꼈다고 했다. 부끄러운 문장, 걱정스러운 문장, 나마저 속이는 문장 따위를 써 내려가며 나도 나름의 치유법을 찾고 있다. 카밀라처럼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면, 쓸 수 있는 무엇이라도 써 내려가야 한다. 어차피 완전한 망각은 환상 속의 망상이다. 오대수 역시 망각을 선택했지만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조금도 과거를 잊지 못한 얼굴이었다. 망각을 선택한 오대수에게 미도는 또다시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다고 잊어버린 건 아니다. 차라리 다 놓아두자. 글로 망가져버린 내 인생을 고백하는 건 그만큼 치부를 내보이는 일이다. 내보이면 그만이다. 부끄러울 것도 아플 것도 없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았으니 다행이다. 서울은 아직 멀다.

서울이 멀긴커녕 지금은 서울에 산다


국민일보 김연수 서평과 관련 칼럼•

•더 많은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달나라는 없다 '난쏘공'의 후일담 '투명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