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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Feb 10. 2018

개가 범을 협박했다? '이재용'을 향한 세레나데

집행유예를 위해 곡학아세를 준비해봤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머리 안에 네 개의 동굴이 있는데 전부 막히면 부비동염이라고 했다. 어깨가 살짝 굽은 의사 선생님이 내 머리통을 투시한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굽이치는 뼈 사이에 빈 공간이 있고 방마다 콧물이 가득 찼다. 코를 풀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5주 만에 고열과 몸살의 원인을 알아냈다. 그전에 다른 병원에 두 번 갔었다. 두 곳 다 얼굴이 권태로 주름진 할아버지 의사가 있었다. 둘 다 10초 만에 감기약을 처방하며 훠이 나를 몰아냈다. 무성의한 할아버지들. 주름의 고랑에 권태가 가득 찬 그들을 극복하고 나는 3심 만에 진실을 알아냈다.

집으로 가즈아

이재용이 풀려난 건 일주일 뒤였다. 잔에 담긴 녹차 티백처럼 찬찬히 온몸에서 진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겁박'당해 '뇌물'을 주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돈이 국시인 나라에서 삼대세습으로 자본의 왕조를 이룬 이재용이 고작 국가수반인 박근혜에게 겁박당했다는 이야기가 허황되었다. 핵이 국시인 북한에서 삼대세습으로 폭력의 왕조를 이룬 김정은이 고작 국가수반인 김영남에게 협박당해 뇌물을 줬다고 북한 법원이 판결하면 우리나라 판사는 믿을까. 실재하는 권력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재판부는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퇴임하고 개업할 판사들의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지폐를 물려주면 꼬리를 흔든다.


고로 목소리가 커야 한다

어느 나라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권력자다. 이탈리아에서는 미디어 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장기 집권했고 미국에서는 TV쇼 진행자가 대통령이 되었다. 재작년에 통일부에 파견 가서 하루 종일 조선중앙TV를 본 적이 있었다. 드라마 여주인공은 쉴 새 없이 수령님 사진을 바라보았고 주체사상을 열변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반해 사랑에 빠졌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는 수령님이 인민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뮤직비디오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전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드라마 여주인공은 끊임없이 갤럭시를 간접 광고했고 재벌 2세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는 삼성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느니 두산이 사람을 먼저라고 생각한다느니 쉬지 않고 재벌에 대한 사랑을 강요하는 광고가 흘러나왔다. 박근혜가 이재용을 겁박할 수 있으려면 군사정권 때처럼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대한뉴스가 나와야 했다. 지금은 영화관에 갤럭시 광고가 나온다. 과연 누가 힘이 센가.


우리 아들이 박근혜한테 협박 당하고 다닌다고? 너는 믿냐?

얼굴이 희망(개업 이후 자신에게 떨어질 돈다발에 대한 희망)으로 주름진 판사 아저씨들이 있었다. 이재용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훠이훠이 실체적 진실을 법원 밖으로 몰아냈다. 주름의 고랑에 기름이 가득 낀 그들을 극복하고 3심 이후 진실이 드러났으면 싶었다.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자본의 수장보다 힘이 세야 한다는 것은 응당 그래야 하는 당위의 영역이지 지금 여기의 진실은 아니었다. 돈을 해외로 빼돌려도 재산 해외도피가 아니라는, 말을 줘도 뇌물이 아니라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이재용의 경영승계 의도를 박근혜만 몰랐다는, 수첩에 대놓고 적힌 내용조차 증거가 아니라고 판단한 판사가 나중에 개업해서 얼마나 벌지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임하고 개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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