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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안과수화 Jul 23. 2021

시아버님의 용돈


오후, 은행 어플 알림이 울렸다. "000님께서 요청하신 송금 000000원이 입금되었어요." 시아버님께서 특별 휴가비라며 온 가족에게 용돈을 보내셨다. 남편을 통해서 주실 법도    사람,  사람 마음을 표현하셨다. 반백수인 내게 용돈은  귀했다. 지난 2월 말, 나는 퇴사를 했고 남편과 제주에 내려왔다. 현실적인 이유 , 젊은 패기 반이었다. 교원자격증이 있는 남편은 전국 어디서나 일할  있지만, 7-8년을 글밥 먹은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일반 회사에 마케팅팀으로 입사해야 하나, 대학원에 갈까? 오만 계획을 떠올렸지만 무엇 하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제주의 임금은 서울보다 30%가량 낮았고,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생계와 거리가 멀었다. 아니, 계획도 없이 제주에 내려온 것부터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집 앞 5분 거리의 초등학교로 출근을 시작했고 나는 여전히 집을 지켰다.



한두 달은 아무런 계획 없이 쉬기만 했다. 먹고 잤고 걸었다. 밤이면 근처 이자카야에 가서 남편과 사케를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이 행동을 반복했다. 남들은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자존감이 떨어진다던데 나는 잘 먹고 잘 자니 자존감은 물론, 감정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이 좋은 날의 연속이었다. 요리가 즐거웠고 고양이 털이 널브러진 집안을 쓸고 닦는 게 행복했다. 배편으로 싣고 온 식물들도 금세 키가 자랐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면, 그 감정에 대해 밤새도록 남편과 이야길 했다.


노는 게 지겨워질 무렵,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고용 형태가 아니기에, 매달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어떤 달은 일이 너무 많아서, 어떤 달은 클라이언트가 무례하거나 인터뷰이 섭외가 안 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른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보단 발톱을 세우고 산다. 그럼에도 마음이 넉넉하다.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투자나 희생과는 거리가 매우 먼 삶이지만 행복하다. 나는 가족의 부분이 아니라, 나로 존재한다. 남편과 아버님, 어머님은 늘 '나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퇴사를 앞두었을 무렵, 나는 조직의 부분, 사회의 부속이라는 사실에 외로웠다. 그러나 나는 결혼을 통해 가정의 울타리를 확장했고 그 안에서 다시금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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