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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안과수화 Nov 27. 2018

청소하는 시간

어느 아침 흐트러진 이불을 정돈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칼을 주우며 생각했다. 청소는 노동인가. 수련인가.


ⓒJohn Salvino


매일 쓸고 닦아도 금세 너저분해지는 방안을 보면 청소라는 ‘노동’이 참 무가치하게 느껴지곤 한다.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라지만.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피곤함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 앞에서 눈 녹듯 사라지지 않는 반면 청소는 안하면 티 나고 잘해야 ‘중간’.


일본에서는 ‘오오소우지’라 불리는 대청소로 신년을 시작한다. 지난해를 정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신년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미신 같아 보여도 공간을 정리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임성민 작가는 <청소 끝에 철학>(웨일북)에서 “청소는 사회생활을 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나의 공간, 내 가족의 공간을 보살폈다는 기쁨이자 일상의 기력과 활기를 북돋는 과정”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너머의 가장 큰 의미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청소를 할 때야 비로소 보이는 먼지와 쓰레기들은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 생물의 분비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듯 공간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활의 증거이다. 치워도 또 나오고, 다시 치워도 계속 나오는 쓰레기 자체가 그 공간에 ‘생활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이상 치울 것이 없다거나 치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생명의 중지를 뜻한다”고. 청소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활동이다.


올 여름엔 유독 생각이 많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우울한 감정이 일상의 저변에 깔려 있었다. 작은 일에도 의욕적으로 달려들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실현 가능성을 고민했다. 나의 청소가 멈춘 것도 그 즈음이다. 겨우 휴지통을 비워내고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전부. 의자 위로는 옷가지가, 책상과 테이블, 침대 옆으로 책, 화장품 등의 자질구레한 물건이 무성한 풀처럼 자라났다. 어느 날 문득 방 안이 내 머릿속처럼 느껴졌다. 움직이는 방향, 공간을 제외하곤 모두 정체된 공기로 가득했다.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사람이 주변과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불교에서는 처음 수행을 시작한 사람에게 제일 먼저 청소를 시킨다. 주변과의 연결고리는 곧 개인의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 옛 승려들은 제자에게 몇 년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청소만 하도록 했다. 수행은 내면의 먼지를 털고 쓸고 닦아내는 과정이고 청소는 유형의 공간을 정리하는 일이니,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바람을 거슬러 빗질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마당에 난 발자국을 모두 지워야 한다’, ‘마당을 쓸고 난 뒤에는 도구를 제자리에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등의 방법까지 계율서 《사분율》에 구체적으로 언급해두었을 정도다. 마치 삶의 지혜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처럼. 청소는 주부에게 주어진 필연적 숙제가 아니다. 오히려 제 몫의 삶을 단단하게 꾸려가는 어른의 몸가짐에 가깝다. 공간에 물건이 차듯, 또 제자리를 찾지 못해 거실 이곳저곳을 배회하듯 우리 마음도 여러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 서고 눕기를 반복한다. 오늘 저녁엔 물걸레를 빨아 거실 바닥을 닦아볼 요량이다.


집은 나를, 나는 집을 닮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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