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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안과수화 Apr 01. 2019

06 친구의 친구와 친구가 되고

미얀마에서 만난 스페인, 일본인 친구들

여행 중엔 여러 수종의 나무가 뒤섞인 숲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모두와 친구가 된다.

아침식사를 위해 웨더스푼에 또 왔다. '오늘은 어딜 가야 할까' 고민하며 여행책을 뒤적이는데 옆자리에서 어눌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소리가 들린다. 여행 중에 곧잘 친구를 사귀는 나인데도 누군가 먼저 씩씩하게 인사를 건낸 건 처음이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일본인 남자 셋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한국에서 왔냐며 웃어 보였다. 몇 마디를 나누다가 세 일본인 친구들과 합석했다. 셋은 오늘 아침 버스로 바간에 도착했고, 아키라와 카즈마는 일행, 유토는 방금 식당에서 만났다고 했다. 카즈마와 아키라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아시아 일주 중, 유토는 도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으로 휴가 중이었다. 짙은 눈매를 지닌데다가 두 사람과 다른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던 아키라. 아니나 다를까 하프 일본인이라며 내게 어느 나라와 혼혈일지 맞춰보라고 했다. 아는 유럽, 아시아권 국가 이름을 다 댔는데도 틀렸다. 아키라는 브라질 혼혈이었다.

다나카를 바른 웨더스푼의 꼬마. 우리 넷과 웨더스푼 직원들은 꼬마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우린 서로 할 줄 아는 일본어와 한국어, 스페인어를 자랑하며 농담을 나눴다. (브라질은 남미 국가 중에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인데, 발음이 비슷해 브라질 사람들은 얼추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 더군다나 아키라는 일본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 전 파라과이에서 몇 년간 살았던 터라 스페인어에 익숙했다.) 나중엔 웨더스푼 직원들과 꼬마까지 합세해 우리의 대화를 더 길고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유토는 한국에 자주 여행을 오는 편이었고 아키라와 카즈마는 미얀마 여행이 끝나면 태국,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올 예정이었다. 식사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에서 만나자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바이크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린다. 우기인데도 날씨가 꽤 좋다. 이틀 내내 파고다를 둘러보았는데도 아직 가보지 못한 사원이 많았다. 하나, 하나 정복하듯 바이크를 타고 내리며 구경했다. 세 곳 즈음 보았을 때였을까. 도로 건너편에서 스쿠터 경적소리가 울렸다. 유토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순간 작은 도시에 적응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사원에선 한 소녀가 얼굴에 다나카도 발라주었다. 동남아에 왔으니 헤나도 했다. 자유로운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나는 몇 년째 타투를 하려 벼르고 있다. 그림도 자리도 의미도 모두 정했으나 게으른 탓에 아직 내 몸엔 문신이 없다. 올해는 정말 해야지.

사원들을 구경하는 중간엔 바간에 온 첫날 내게 사원을 구경시켜주었던 소년도 다시 만났다. 반가움에 몇 마디 나누던 것도 잠시 숙소로 출발했다. 바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양곤으로 향하는 슬리핑 버스를 예약해두었기 때문. 호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로비로 나와 픽업버스를 기다렸다. 나의 E 바이크 선생님인 호텔리어와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더니, 그도 그럴 거라고 했다. 요새 스쿠터를 한 대 사고 싶은데, 서울에서 스쿠터를 운전하게 된다면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그가 생각날 것 같다.

나의 E바이크 스승님과.

로비에 앉아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줄 픽업 버스를 기다린다. 저 멀리에서 유!라는 큰 외침이 들린다. 드라켈과 라니다. 웨더스푼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나를 기다렸다는 둘. 우리는 서울과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 다시 연락하자며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그리곤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오늘 하루 일과를 주제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데 익숙한 두 남자가 로비로 들어온다. 아키라와 카즈마였다. 웃음이 터졌다. 두 사람이 바간에 수많은 숙소 중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이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다니. (우연이라기에 우리의 인연은 양곤에서 다시 이어진다.) 스페인 그리고 일본인 친구들에게 서로를 인사시켰다. 아키라의 스페인어가 빛을 발했고 나는 3일만에 바간의 터줏대감이 된 기분이었다. 넷을 호텔 식당과 숙소로 돌려보낸 후 홀로 로비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트럭의 짐칸을 좌석으로 개조한 버스(?)가 왔다. 차에 몸을 싣는데 2층 호텔 식당에서 내가 버스 타는 걸 내내 내려다보며 기다리던 드라켈과 라니가 Yu, Take care!!!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사귄지 겨우 이틀 된 친구들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다니. 함께 한 시간이 결코 관계의 깊이나 감정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찰나에 누군가에게 흠뻑 젖는다.

밤을 뚫고 달리는 픽업버스 안, 드라켈과 라니가 건넨 인사를 계속 떠올랐다.



**아키라가 여행 이후 업로드한 바간 브이로그입니다. 글과 사진으로 전달되지 않는 바간의 아름다움을 링크로 전달합니다.

https://youtu.be/bRwTZVBs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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