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뚫을 듯 강렬하게 쏟아지는 볕에 눈을 떴다. 일주일 꼬박 마감을 치르고 비행기와 슬리핑 버스에서 잠을 자느라 푹 잔 건 근 1-2주 만이었다. 어찌나 푹 잠에 들었는지 점심을 앞둔 시간이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엔 서양인 커플과 나뿐. 눈인사를 건네고 책을 좀 읽다가 돌아왔다.
외출 준비를 끝냈으나 시내로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이 앞섰다. 어제 호텔리어가 지나가는 말로 스쿠터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고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 무턱대고 물었다. "스쿠터 빌릴 수 있어요? 근데 가르쳐줘야 돼요." 내가 스쿠터를 운전해본 경험은 7년 전 태국 빠이에서가 전부. 그마저도 운동장 몇 번 돌다가 포기했다.
호텔리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E바이크를 빌려줄 수 있어요. 자전거 탈 줄 알면 금방 타요. 바간 온 동네 꼬마들도 타는데요 뭘."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호텔 마당 앞에서 호텔리어의 코칭 아래 E바이크를 몰았다. 최대속도가 30km/h 밖에 올라가지 않으니 브레이크만 살살 다루면 될 듯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호텔 문을 나섰다. 큰 도로 위에서 나는 줄곧 깜짝깜짝 놀랐다. 내 옆을 지나는 차, 스쿠터, 자전거 모두가 경적을 울렸기 때문.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지나는 걸 알리는 경적음이었다. 내가 느려서 울리는 짜증 섞인 소리가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허기진 배를 채우려 '또' 웨더스푼으로 향했다. E바이크를 가게 앞에 세우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잡았다. 아침에 수영장에서 인사를 나눴던 서양인 커플이 앉아있었다. 나도 그들도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소리 내어 인사를 나눴다. 식사를 마치곤 자릴 떴다.
E바이크에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식당과 은행, 가게가 늘어선 짧은 시내만 벗어나면 도로에 차, 스쿠터가 많지 않아 운전하기 수월하다. 페달을 밟지 않는 자전거와 비슷했다. 보물찾기 하듯 스쿠터를 몰며 구글맵에 표시해둔 파고다를 몇 곳 돌았다.
사원을 지나 바간의 재래시장인 냥우 마켓으로 향했다. 사람도, 스쿠터도, 차도 많아 바이크를 세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사람들은 제 갈길 가기 바빴고. 우겨넣듯 주차를 하고 1960-1980년대 우리나라의 시장을 닮은 냥우 마켓 안으로 들어섰다. 딱히 사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었는데 밀짚 공예품 가게에 들러 엄마를 위해 작은 가방을 샀다. 아버지와 딸이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가격에 거품이라곤 1도 없어서 미안하고 고마웠다. 물건을 사면서 고맙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이 든 아버지가 종일 자리에 앉아 만들었을 가방에 비하면 내가 내민 돈은 비루해 보였다.
오후 4시, 시장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이 무거웠다. 귀소본능처럼 웨더스푼으로 바이크를 몰았다. 1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비가 금세 멎을 것 같았다. 웨더스푼에 바이크를 세우고 들어서는데 서양인 커플이 또 앉아 있었다. 셋 다 웃음이 터졌고 자연스레 그들과 합석했다.
스페인 국적의 드라켈과 라니. 호텔에서 빌린 바이크의 액샐러레이터가 고장이 나서 웨더스푼으로 돌아온 둘은 새 바이크를 가져다준다던 호텔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나와 마주쳤을 때 둘은 내가 일본인 일지, 중국인 일지 내기를 했고 한국인이라는 나의 대답에 더 크게 웃었다. 이후 우리는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국적을 맞추는 내기를 하며 맥주를 마셨다. 비를 피해 1시간만 앉아 있으려던 나의 계획은, 호텔리어가 새 바이크를 가져오면 떠날 거라던 드라켈과 라니의 계획은 어디로 가고 9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대식가 라니는 앉아 있는 내내 식사를 두 번이나 했다.
밤이 어둑해졌다. 스페인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라니가 앞장을 섰고, 내가 그 뒤를 쫓았다. 아침, 내가 호텔리어한테 바이크를 배우는 모습까지 지켜봤다던 둘은 반나절 사이 늘어난 나의 운전실력을 칭찬했다. 그리곤 시속 30km/h라서 그렇다며 다시금 한국에선 운전할 수 없을 거라고 놀렸다. 늦은 밤 호텔 로비에서도 우리의 농담은 멈추지 못했다. 우리 셋 다 미얀마의 따가운 볕에 팔과 어깨가 익었고 기분 좋게 볼도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