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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숭숭현 Nov 05. 2020

힘 좀 빼도 되잖아?

너무 예쁜 순간을 놓칠만큼 힘 주고 사는 건 좀 슬퍼

백수 3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아빠의 기일을 챙기러 이틀 전에 본가에 내려왔다.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인 편두통까지 달고 왔다. 나는 생긴 거와는 달리(?) 굉장히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 좋게 말하면 굉장히 세심하고 섬세한 성격이 타고난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거에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쓰느라 편두통을 달고 산다. 튼튼하지 않은 어깨 근육 덕분에 후두부 두통은 덤이다.


20살에 타지로 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어느덧 독립 10년 차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매우 공감할 것이다. 끼니는 물론이고 빨래부터 전구 교체하는 일까지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사람처럼 살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인구수의 약 5분의 1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서울특별시에서 특별한 것은 바라지도 않고 평범하게라도 살기 위해서는 주먹을 불끈 쥐어도 모자라다.


그러다 보니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알록달록한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는 것조차 힘들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엉덩이를 붙이면 쪽잠 자기 바쁘고, 스마트폰 들여다보기 바쁘다. 자연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아 가을이 왔구나. 봄이 왔구나’할 새도 없이 ‘아 올해도 다 갔구나’만 읊조리게 된다. 그만큼 오늘 하루를 겨우 살아내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도사리고 있는 와중에 백수니 얼마나 머리와 마음이 조급하고 복잡하겠는가.


본가가 있는 시골에 내려오면 마시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보이는 세상도 아날로그적인 것이 더 많다. 눈만 돌리면 눈이 부시는 전광판과 스마트한 기술이 접목되어 있는 기기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원시부족 동네는 아니다. 다만 서울보다는 현저히 덜 하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장차 19년을 살았기에 서울에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본가에 오면 손에 접착되어 있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운 스마트폰과 자연스레 멀어진다. 알람 대신 우리 집 귀염둥이 ‘숭숭’이가 격한 뽀뽀로 아침을 깨워주고, 가족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시계를 보지 않아도 대략 몇 시인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숭숭이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동생 심부름도 해야 하고, 엄마랑 도란도란 수다도 떨어야 한다. 얼마나 바쁜가! 서울에서는 혼잣말을 밥 먹듯이 하고, 음악이 아니면 적막함을 깰 것도 없다.


오랜만에 동생을 따라 축사에 갔다. 축사에는 길고양이가 자리 잡고 산다. 무려 2대가 산다. 길고양이들은 동생과 엄마를 참 좋아한다. 사람한테 치대고, 애교를 피우는 스타일인데, 이런 고양이들을 보고 ‘개냥이’라고 하나 싶다. 나름 어른 개냥이 2마리와 새끼 고양이 3마리 모두가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밥을 먹는다. 어쩌다 보는 모습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신나게 밥을 먹는 고양이 5마리의 크고 작은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고개를 살며시 드니 해질녘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아마 이 모습은 이곳에만 허락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아마 서울 어느 뒤 동네에서도 고양이 가족이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사랑스럽게 밥 먹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해질녘 하늘도 아마 한강을 발아래 깔고 더 드넓게 펼쳐지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조차 온전히 느낄 새 없이 주먹 불끈 쥐고 힘주며 사느라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힘주고 살지 않아도 될 텐데, 나는 왜 주먹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을까. 살짝만 힘 풀어도 그냥 지나쳐버리기 아까운 멋진 순간들을 포착하며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또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사실 너무 어렵다. 힘주고 사는 것보다 힘 빼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어렵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삶에 적용시키기까지가 너무 어렵다. 몸 따로 머리 따로 노는 느낌이다. 좋지 아니할 수 없는 순간들을 다 놓쳐버린 후에야 ‘왜 나만 제대로 즐기지 못 했냐’며 누군가 탓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까지 된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고, 조금 다쳐도 괜찮고, 조금 넘어져도 괜찮다. 이렇게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또한 잘 안다. 혼자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그 험악한 서울에서도 꿋꿋하게 넘어지지 않고 잘 지내는 멋진 인간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힘 좀 빼도 되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고, 멋들어지게 살 수 없다는 거 알고 있다.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다는 걸 몸소 잘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는 좀 나약한 소리도 좀 하고, 도와달란 소리도 좀 하고, 못하겠다고 뒷걸음질도 쳐보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다고 해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나지 않는다. 되려 응원을 해주겠지. 설령 떠나는 이가 있다면 그냥 쿨하게 그 또한 놓아주면 된다. 어차피 언젠가 떠날 사람이었는데 구실을 찾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러니 이제는 좀 힘 좀 빼고, 둘레둘레 주변도 구경하면서 ‘나만 이렇게 궁상맞게 살지 않구나’ 위로도 얻으면서 삽시다. 두 주먹만 쳐다보고 힘만 주면서 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들이 널렸습니다. 예? 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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