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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숭숭현 Nov 24. 2020

따뜻한 감전

내가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어느덧 몸도 마음도 시려오는 11월이 왔다. 취준생의 11월은 몸보다 마음이 더 시렵다.


감사하게도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겨서 면접을 본 후 친구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약 4년 만에 보는 면접이라 뭘 어떻게,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준비하지 않고 갔다. 이참에 내 순발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도 해볼 겸. 요약하자면 면접 준비는커녕 합리화만 한 채 다녀왔다는 소리다. 합격 여부를 떠나서 그냥 편하게 수다 떨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녀왔지만 면접을 끝마치고 나오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을 했나 보다.

뒷 북치며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에 올랐다. 환승을 하기 위해 건대입구역에서 하차한 후, 괜스레 기분이 좋아 마스크 뒤로 미소를 지으며 팔랑팔랑 걸었다.

그때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떤 젊은 청년(학생 같아 보였다)과 할머니 한 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할머님은 청년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꽂는 중이었고, 청년은 눈이 동그랗게 뜨며 할머님의 손을 주머니에서 빼내려 했다. 자칫 잘못하면 할머님이 청년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훔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찰나의 순간을 목격하며 나는 내 갈길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는 그 장면을 해석해보았다. 내가 추측한 바로는 이러했다. 청년이 할머님의 바퀴 달린 시장바구니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끌어다 주었고, 그에 무언가라도 보답하고 싶은 할머님은 청년의 주머니에 본인이 당장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주신 것 같다. 뭐 요구르트일 수도 있고, 지폐일 수도 있고, 단감 하나일 수도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할머님이 청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임은 틀림없다. 청년의 눈이 동그래진 채 동공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훈훈한 모습을 목격하니 갑자기 마음 한편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차 올랐다. 사람 사는 냄새를 찾아보기 어려운 도시에서 게다가 안타까운 소식이 난무하고 있는 요즘 사람 냄새가 나는 순간을 목격하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만개했다. 이럴 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 마음 깊이 들어와 따뜻함으로 스멀스멀 피어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행이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그런 행동. 엄마는 선한 동기도 좋지만 세상에는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위험하니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도와주는 것도 사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선행을 베풀고 싶을 때가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또는 우리 엄마 같아서, 내 어릴 적 같아서 등등. 분명 그 청년도 수많은 동기 중 어떤 하나의 것으로 인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우울할 때, 스트레스가 최고조일 때, 자존감이 낮아질 때 남을 돕는 행위가 치유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면접으로 바짝 긴장 상태였던 내 몸이 그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사르륵 녹는 느낌이었다. 비록 간접적으로 그 마음과 분위기를 느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은 빠르게 날 감전시켰다.


할머님이 청년에게 건넨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값어치로 따질 수 없다. 당시 할머님이 가진 전부였을 수도 있고, 한 끼 식사였을 수도 있다. 할머님이 청년에게 건넬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을진 몰라도 청년은 그 이상의 행복과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다.


네 탓, 내 탓하며 각박하고 삭막한 냄새가 요동치는 때에 이런 따뜻한 감전은 정말 반갑다.

순간포착! 사람냄새 나는 순간! 다음엔 어떤 모습들을 포착하게 될까. 모두들 불안대신 설렘이 가득한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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