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과 생활, 2018 SPRING VOL.61 기고
태양이 뜨거운 날, 산에 올라 어느 절간에 들러 쉬고 있으면 조용히 들려오는 잔잔한 풍경소리가 더위로 몽롱해진 정신을 일깨운다. 한지를 덧바른 작은 문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산사의 작은 방. 그런 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찻물이 고요하게 담겨 있는 찻잔, 사기장이 정성스럽게 빚어낸 질박하고 아담한 찻잔을 감상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다. 그러나 요즘은 공장에서 기계가 대량으로 찍어내는 저가의 찻잔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감성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찻잔은 물론이고 생활 식기에 이르기까지 사기장의 손에서 태어난 도자기를 사용하고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늘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도자기, 조선 백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이다. 도기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하는 자기는 불을 때는 가마 기술, 자기의 재료로 사용되는 흙을 구분할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중국과 조선을 제외하고 아무나 만들 수 없는 하이테크 아이템이었다. 예전에 일본 규슈 사가현을 여행하다가 아리타 도자기 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에서 납치된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 사기장 집단이 정착하여 일본 최초의 자기인 백자를 빚어낸 마을인데, 그곳에 이삼평의 14대 후손이 운영한다는 도자기 가마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 마을은 단체 휴무였고 비까지 내린 터라 대부분의 가마들이 문을 닫아 한산한 분위기였으나, 운 좋게도 이삼평 가마만은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전시장을 둘러보니 다른 곳과는 다르게 백자들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을 지키는 후손 가족분의 이야기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랫동안 맥이 끊겼다가 최근에 다시 가마를 열었지만, 다른 가마들에 비해 그 실력과 명성이 떨어졌고 생활도 넉넉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자기가 아닌 백자만을 고집하는 것은 400여 년 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구워 냈을 이삼평 조선 백자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매년 이천, 여주시에 방문하여 한일 문화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비록 높은 명성은 아니지만, 화려한 일본 도자기들 사이에서 홀로 하얀빛을 발하는 이삼평 가마의 백자가 더 아름답고 가슴 벅차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판매대에 가지런히 놓인 백자들은 보고 있으니 온 정신을 다해 그릇을 빚고 1200도가 넘는 불 앞에서 며칠 밤낮을 씨름했을 조선 사기장들의 모습이 떠올라 새삼스럽게 숙연 해졌다. 그렇게 탄생한 조선 백자의 아름다운 순백색은 어질고 착하게, 거짓 없고 욕심 없이 살아가라는 어릴 적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사기장의 노력으로 그릇이 만들어지고, 그 그릇에 담긴 어머니의 고봉밥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지금 나에게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추상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환기 화백은 백자의 순백색을 달빛에 비유하며 백자를 자주 그렸다. 그의 그림 중에 ‘귀로’라는 작품을 보면 한복을 입은 여인이 생선이 담긴 커다란 백자 사발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장을 보고 저녁상을 차리러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김환기 화백도 백자에서 어머니를 보았던 것일까.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영원히 고통받았다는 프로메테우스. 그의 희생으로 인간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처럼, 부모님의 사랑으로 잉태된 지금의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영원히 고통받았다는 프로메테우스. 그의 희생으로 인간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처럼, 부모님의 사랑으로 잉태된 지금의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백화점의 마이센, 웨지우드 같은 명품 도자기들이 꿰차고 있는 층을 거닐다가 걸음을 멈춘 적이 있었다. 점원이 다가와 명품이라며 자랑을 연신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렇다. 유럽은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어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가장 늦게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명품 도자기를 만들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는 애프터눈 티 타임 같은 차문화는 물론, 본 차이나라는 영국식 도자기를 발명하여 도자기 강국이 되었다. 일본 또한 조선 백자에 대한 예찬과 부러움에서 시작하여 세계 최고의 도예국이 되었고 생활 도예 문화도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독창적인 가치를 반영한 도자기를 생산하고 국민 생활 속에서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커피 문화에 자리를 빼앗긴 우리 차문화는 산사의 승방 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유럽산 명품 도자기가 유행을 하다 보니 생활고에 시달리는 우리 도예가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도자기에 대한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시간이 난다면 한 번쯤 이천에 있는 도자박물관을 찾아보자. 백자, 고려청자, 분청사기와 같은 우리 도자기 특유의 깊은 색과 고운 선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문화와 가치가 집약된 도자기를 제대로 알고 발전시켜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다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