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성민야(城者盛民也), 한양도성

투석과 생활, 2017 AUTUMN VOL.58 기고

by 강승익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출근길을 두렵게 하는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도로 위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수많은 자동차들의 도시다. 각종 소음과 현란한 전광판들의 어지러운 빛줄기가 무차별적으로 내리 꽂히는 복잡한 현대문명의 상징물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서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도시보다 긴 역사와 유적을 품고 있다. 기원전 18년 온조왕이 한강유역(송파구,하남시 일대)에 도읍하고 백제를 건국함으로써 우리 역사에 화려하게 등장한 이래로 2천여년의 문명을 켜켜이 간직한 오래된 도시인 것이다.



빌딩 숲을 따라 걸어다니다보면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서울의 오래된 유적들을 발견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기였던 조선시대 유적이 가장 많다. 5대 궁궐, 종묘, 사직단은 물론이고 외국 공사관이 위치했던 정동거리, 백성들 사회경제 활동의 중심을 이루었던 청계천과 4대문 일대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나는 그 중에서도 현재까지 국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고 있는 한양 도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예로부터 삼각산(북한산)과 한강 사이에 햇빛이 잘들고 너른 땅을 한양이라고 불렀는데, 이 곳에 세워진 성곽과 그 성곽의 보호 아래 세워진 도시를 한양 도성이라 한다.

800px-Suseonjeondo.jpg 수선전도

종로 일대를 중심으로 거대한 컴파스로 큰 원을 그려낸 듯한 한양 도성은 그 둘레가 18.6km에 달하며, 평지와 산과 물을 종횡무진 가로질러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이 가진 고유의 선을 해치지 않아 마치 그 자리에 원래부터 서 있었던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한 우리 선조들의 건축철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축성술과 구조를 계승했으며, 조선의 성곽 축조기술의 변화와 발전을 모두 담고 있어서 건축사적 의의도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민가의 축대로, 학교의 담장으로, 산책길로, 처음 축조되었을 때처럼 여전히 국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릇 안에서 여러 식재료가 섞여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비빔밥과 같다. 태초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과 강, 그 터전에 깃든 오래된 이야기와 흔적, 현대인이 이룩한 21세기 문명이 지금도 한양도성 안에서 버무려지고 있다. 이렇게 서울은 어떤 도시에서도 갖지 못한 독창적인 매력과 유,무형적으로 높은 인문학적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IE002226838_BIG.jpg 문화유산채널 영상 캡쳐



몇 년전 부터는 성곽을 따라 산책하거나 운동할 수 있도록 길이 잘 정비되었고, 여러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한양도성은 크게 남산구간, 낙산구간, 북악구간, 인왕구간, 이렇게 총 4구간으로 나누어져 있고 구간별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남산구간과 낙산구간은 산이 낮고 길이 험하지 않아서 부모님이나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기에 좋지만 북악구간과 인왕구간은 산이 높고 거칠어 등산복, 등산화를 단단히 차려입지 않으면 다소 오르기 어렵다. 의지와 체력이 있다면 하루에 1바퀴 순성도 가능하며, 약 10시간이 소요된다. 해설사를 동반한 답사도 가능하여 교양쌓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상세코스와 정보는 서울시 또는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러한 한양 도성을 세계 유네스코문화유산에 공식 등재시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인문.적인 가치를 더 많이 발굴하려는 노력하고 있다.

문화유산채널 영상 캡쳐



나는 걱정거리에 머리가 아플 때면 가끔 혜화동 낙산구간을 오른다.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풍화된 오래된 성돌과 시공을 맡은 지방군현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성석이 눈에 띈다. 그 성돌을 쓰다듬으며 수백년 전 이 성돌을 다듬질 했을 이름모를 석공을 생각한다. 고향은 어디일까. 자녀는 몇이나 두었고 어떤 연유로 가족과 멀리 떨어진 한양땅까지 올라와 고단하게 성돌을 다듬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삶이란 그 형태만 바뀔뿐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다는 어느 석공이 나에게 전하는 불변의 진리이자 소리없는 위로일 것이다. ‘성자성민야(城者盛民也)’, 성이란 무수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백성들의 힘으로 지어지고 백성의 터전으로서 수세기를 버티고 서있는 한양도성은 우리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만물이 겨울잠 준비를 하는 가을의 선선함은 한양도성을 순성할 수있는 최적의 날씨다. 단풍진 도성길 따라 거닐며, 단풍따라 붉게 물드는 가슴을 느끼며, 삶을 살아가는 굳건함을 배워보자.


삶이란 그 형태만 바뀔뿐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다는 어느 석공이 나에게 전하는 불변의 진리이자 소리없는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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