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의 기억, 남한산성

투석과 생활, 2017 WINTER VOL. 59 기고

by 강승익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들고 소풍 삼아 자주 방문했던 장소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방문한 이 곳의 분위기는 그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하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경쟁과 더불어 동북아시아 여러 국가들 간에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일까? 남한산성이 가진 역사적 배경의 오마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미국, 북한 등의 나라들과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국제정세의 중심에 위치한 운명 탓에 침략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많은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문제들이 이런 위기를 만드는지, ‘남한산성’을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져 있으며 청량산을 중심으로 축성된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주장성이라는 성을 이곳에 쌓았다고 전해지며, 인조 2년 주장성을 개축, 보강하여 세워진 산성이 오늘날의 남한산성이다. 총 둘레 12km에 달하고 북한산성과 함께 서울을 방어하는데 목적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가장 잘 되어 있고, 보존상태가 좋다. 또한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축성기술 발전단계와 무기체계의 변화를 살필 수 있으며, 산성 내에 마을이 있어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가치로 인정받아 2014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바로 이 남한산성이 ‘병자호란’의 무대이며, 상징과도 같이 여겨지고 있다. ‘병자호란’이 어떤 사건인지 이야기하려면 ‘임진왜란’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1592년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조선땅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만주 땅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에 누르하치라는 지도자가 나타난다. 그는 여진족을 통합하고 후금이라는 나라를 건국(1616년)하기에 이른다. 후금은 기마병을 앞세운 강한 전투력으로 명나라의 패권에 도전했고, 두 나라의 싸움에서 사실상 명나라엔 패색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시기에 조선에서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의리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인조반정(1624년)’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왕으로 추대한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광해군이 추진했던 ‘중립외교’가 철회되고, 명나라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외교가 흘러가자 후방의 안전이 불안했던 후금은 조선을 침공하는 ‘정묘호란(1627년)’을 일으킨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여 년 만에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여 항전하지만, 결국 ‘형제의 맹약’을 맺는 조건으로 후금군은 철수한다.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빌미로 조선에 무리한 요구를 계속해왔고, 군신관계를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조선에서는 후금과의 화의를 파기하자는 ‘척화 배금’의 여론이 급격히 고조된다. 이를 간파한 후금은 재차 침공을 감행하는데 이것이 ‘병자호란(1636)’이다. 후금은 이 해에 청나라로 국호를 바꿨다. 그리고 12월이 되자 군대를 일으켜 단 일주일 만에 중국 심양에서 한양까지 진격한다. 너무 빠른 진격 속도에 피란 준비도 못 마친 인조와 조정은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성문을 닫아걸고 항전했다. 남한산성은 이렇게 우리 역사에 등장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조정은 47일 간 항전했지만, 결국 인조는 삼전도(서울 송파구 삼전동)로 나아가 청황제 앞에서 3번 절하고, 1번 절할 때마다 머리를 땅에 3번 찧는 ‘삼배구고두례’를 하며 항복한다. 나아가 조선은 이 ‘병자호란’을 청황제의 공덕으로 칭송하는 글을 지어 바치는 치욕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 글이 기록된 비석을 ‘삼전도비’라고 하며, 현재는 잠실 석촌호수 앞 샤롯데시어터 건너편에 세워져 보존되고 있다. 이후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었고,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받게 되었으며 백성들은 ‘임진왜란’ 그 이상의 피해와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야기는 글로 다 기술할 수도 없고, 말로 다 형용할 수도 없다. 다시는 이런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눈이 소복이 쌓이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날을 골라 남한산성을 방문해보자. 해설사를 동반한 둘레길 답사, 트레킹, 어린이를 위한 역사교육프로그램 등 각종 행사가 다수 열리고 있으니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6.25 전쟁도 마찬가지였듯이 국제정세판단이 냉철하지 못하고 정치외교가 우리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을 때, 주변 강대국들의 알력 다툼에 정치 명분을 위하여 어설프게 개입하였 때, 우리가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을 때, 어김없이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 피해와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들의 몫이었다는 역사적 사실 말이다. 남한산성에 오른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가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을 때, 어김없이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 피해와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백성, 국민들의 몫이었다는 역사적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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