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과 생활, 2018 AUTUMN VOL.62 기고
‘가을 탄다’라는 말처럼 가을이 오면 사람들의 심리 변화가 유독 두드러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계절의 변화가 몸과 기분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여지없는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노을 지는 저녁시간을 계절에 비유하자면 바로 이 가을이 될 것이다. 자연의 생동이 저녁을 맞아 휴식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 생활에도 하던 일을 정리하고 쉬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선조들도 자연에 삶의 리듬을 맞추어 살아가려고 했다. 자연 고유의 형태와 선을 헤치지 않고 조용히 자리 잡은 옛 도시, 전통 건축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정원을 꾸미는 방식에서 자연 친화적인 예술성과 철학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창덕궁 ‘후원’이 대표적이다.
창덕궁 북쪽 응봉산 자락 숲 속에 조성한 후원은 조선의 왕실 정원이다. 굳이 명산을 찾아 떠나지 않더라도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좋아 세상이 붉게 물들 때마다 찾았다. 후원으로 이어지는 길에 흐드러진 단풍잎이 카펫처럼 깔리면 그 모습 자체로 예술작품이 된다. 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 것 같은 풍경. 그 옛날 유대민족이 갈라진 바닷길을 따라 가나안 땅을 향해 갔을 때, 북부여를 탈출한 주몽이 자라와 갈대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넜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안내자를 따라 십 수 명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며 관람을 해야만 하는데, 제대로 즐기기 위해 일부러 일행에게서 거리를 두어 걸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제일 먼저 연못 ‘부용지’를 볼 수 있다. 금빛 잉어가 헤엄치는 부용지를 중심으로 휴식과 학문의 용도로 쓰였던 주합루, 부용정, 영화당과 같은 전각들이 둘러 세워져 있었다. 몇 평 남짓 되어 보이는 영화당은 산책하는 시민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언제 한 번은 사람들이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려 저만치 모여 있는 동안, 영화당에 들어가 슬쩍 누워 본 적이 있다. 울창하되 빛과 바람이 잘 드는 산자락에 작은 초당을 짓고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잠시였지만 달달한 낮잠에 빠질 것만 같아서 얼른 일어나 앉았다.
안내자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보일 듯 말 듯 배치된 다른 정자나 전각들도 볼 수 있다. 정사에 지친 왕이 부족한 공부를 하며 쉬었던 곳들이다. 지나가면 늙지 않는다는 소박한 ‘불로문’을 지나면 그 옆으로 조성된 다른 연못 ‘애련지’가 있다. 조선 19대 왕 숙종이 붙여준 이름이다. 연꽃을 좋아한 숙종이 더러운 곳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이야말로 군자의 덕을 지녔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애련지를 지나 굽이치는 길 곳곳에도 존덕정, 폄우사, 연경당 같은 전각들이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 뒤로 숨어있다. 모두 조선 후기의 왕들이 독서하고 시를 썼던 소박한 곳이다. 나무를 돌아 전각으로 다가가면 들려오는 새소리에 시상이 절로 떠올랐다. 특히, 볏짚으로 지붕을 엮은 청의정이라는 정자 옆으로 작은 논이 있는데 매우 아담하여 아름답다. 왕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의 고충을 몸소 체험하던 곳인데 군주의 본질을 잊지 않도록 조성된 곳이다.
이렇게 한 시간여를 산책하다 보면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창덕궁 후원은 왕과 신하들이 자연을 즐기고,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는 공간, 나아가 백성을 향한 휴머니즘을 고민하던 공간인 것이다. 이처럼 건축물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어울리거나 자연을 건축물 안으로 끌어들여서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건축 철학을 ‘차경(借景)’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연을 헤치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 즉 건축물의 자리 앉음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자연 친화적인 예술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창덕궁 후원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에 다시 섰다. 무릉도원에서 잠시 노닐다가 현실로 돌아오니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다는 김상용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시의 내용처럼 밭을 갈고 호미로 김을 매지는 않더라도, 자연을 즐기며 ‘안분지족’하며 살자고 늘 다짐했는데 허욕이라는 잠에 취해 아름다운 것들을 시간 속에 흘려버릴 때가 많다. 다시 한번 다짐하노니 가끔은 엉뚱한 길을 가더라도, 군자처럼 살 수는 없을지라도 새들의 노래를 공으로 듣지는 말아야겠다. 강냉이가 익으면 함께 나눠 먹는 삶, 누군가 왜 사냐고 묻거든 그저 웃는 삶을 살아야겠다. 잠깐의 사색을 마치고 돈화문을 돌아보니 살짝 솟구친 처마 끝이 눈에 들어왔다. 입꼬리 올라간 저 지붕, 누구의 미소인가.
다시 가을을 생각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잠시 머물다 떠나는 늘 아쉬운 계절. 더웠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겨울을 준비하라는 메시지인 듯 선선한 바람이 정신을 일깨운다. 해 뜬 하늘은 청화백자의 코발트블루처럼 새파랗고, 노란 들국화 같은 달빛은 또렷하다. 창문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 오히려 가슴 뜨거워지는 것이 내 몸도 붉게 물드는 것만 같다. 우리 집에 가을 공기 한 모금 채워 놓고, 달빛 한 조각 벽에 걸어 감상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으로 잡을 수만 있다면, 바람 타고 날아온 창덕궁 후원의 가을 한 줌을 내 방에 뿌려 언제든 단풍놀이를 하리라.
손으로 잡을 수만 있다면, 바람 타고 날아온 창덕궁 후원의 가을 한 줌을 내 방에 뿌려 언제든 단풍놀이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