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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이유

일상의 재해석

by 승진

소설이나 시 등이 아닌 에세이를 쓰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글쓰기란 ‘나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나는 글쓰기를 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쓸 자격이 없었다. 과거의 나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안대를 끼고 1등을 하기 위해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대학 합격만을 위해 앞만 보고 공부만 해왔다. 그런 나에게 뒤를 돌아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뒤돌아보는 순간,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다른 경주마들에게 순위를 빼앗기고 말테니깐.


같은 이유로 감정도 무뎌졌다. 감정은, 대학 합격의 방해 요소였다. 쓸데없는 감정은 경주마에겐 달리기의 집중을 방해하는 효과밖에 주지 못했으며 말의 속도를 늦추는 결과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과 감정이 없는 자에게 글쓰기란, ‘시간의 낭비’이자 ‘대학 합격을 포기한 사람의 행동’이었다.


대학을 합격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의 첫날은, 자유시간에도 핸드폰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든 배운 것을 메모해서 A급 훈련병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노트를 챙겨왔기에 ‘이런 텅 빈 시간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모두 적자’하고 일기를 쓰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내 일기를 봤을 때 ‘이런 일들이 있었지, 다 재미있는 추억들이네’라고 말할 수 있는 일기를 썼다.


그렇게 내 일기는 그날 있었던 ‘현상’ 위주로 적혔다. 내 일기는 나중에 보아도 재미있었어야 했기에 선임의 심한 부조리나 간부의 말도 안 되는 지시는 적지 않았다. 나중에 내 일기를 보았을 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땐 일기가 재미있지 않고 기분이 안 좋아질 테니깐.


재미있는 것만 생각하려 노력하며 군대에서의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나랑 매우 친하고, 나랑 4개월 차이 나는 선임이 전역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전역한다는 사실에 설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처음으로 ‘전역’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전역하고 뭘 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드디어 시키는 것만 해왔던 군대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유롭지 못했던 내가 전역하고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여행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휴가 복귀 이틀 전, 전역할 때까지 여행 관련 책이나 읽어서 어디 여행 갈 건지 계획이나 하자 하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사서 들어왔다.


지금까지 나는 소설 위주의 책을 읽어왔다. 현실과는 다른 재미난 설정, 기가 막힌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 근데 에세이인 ‘여행의 이유’ 책을 읽고 왜 내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지를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적혀있어 큰 공감을 했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영하 작가처럼 내 감정을 나만 느끼지 않고 다른 곳에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연기처럼 희미해져 가게 두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일기장에는 ‘현상’ 대신 ‘그 현상에 대한 내가 느낀 감정’의 이야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밤 근무 중 무심코 보았던 밤하늘의 별들에서 느낀 전역 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나의 걱정과 기대가 일기에 적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을 보고 싶어도 휴가를 나가지 못하는 나의 무력감과 슬픔이 일기에 적혔다. 전역 날이 적혀있는 달력을 보면서 앞으로의 군 생활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에 대한 나의 막막함이 일기에 적혔다.


일몰 사진을 찍었을 때 남들이 “왜 찍었어?”라고 물어보면 “그냥 이뻐서.”라고 대답하는 건 '현상' 자체에만 집중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마지막의 모습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서.”라고 말하는 삶을 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을 어딘가에 남기는 것이다.


이유 있어 행동하고, 그 행동한 것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내 ‘글쓰기의 이유’이다.



‘강력한 이유는 강력한 행동을 낳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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