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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와 가사

멜로디 속 숨겨둔 진실한 감정

by 승진

예전에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보다는 멜로디를 더 중요시했다.


사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는 거의 듣질 않았다. 걸어 다닐 때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가 아는 원래 멜로디에 즉흥적으로 만든 가사를 붙여 흥얼거렸다.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네가 가사 알아서 만들 거면 차라리 작사가가 되는 게 어떻겠냐"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나는 김동률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담담하면서도 무언가 절절한 감정이 좋았다. 그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의 생애가 궁금해져 검색해 보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즐겨 듣던 '오래된 노래'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닌, 그의 실제 경험담을 담고 있는 노래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노래를 틀고 가사에 집중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 귀 안을 스쳐 지나가는 멜로디와는 달리 가사를 듣기 위해선 그 ‘노래’ 하나에만 집중해야만 했다. 한 순간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귀에 익은 멜로디만 남고 가사는 흐려졌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무수한 멜로디들을 뚫고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사를 끄집어내야만 했다.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노래였지만, 노래 하나에 집중해 가사를 끝까지 보고 나서야 이 노래를 진정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자신의 추억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에 대한 복잡한 심정, 그리고 옛 연인이 이 노래를 듣고 추억이 다시 떠올라 괴로워했을 생각에 미안해하는 감정까지. 그 모든 김동률의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도 스며들었다. 결국, 노래의 본질적인 감정은 가사 속에 있었다.


누군가 내게 “어떤 노래의 가사가 가장 가슴에 와닿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많은 노래들이 있겠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를 고르겠다. 이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이렇게 홀로 누워 천장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이 가사에는 슬프고, 그립고, 힘들다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노래 가사에다 감정의 단어 없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내었다. 잊으려 해도 떠오르는 기억, 애써 감추려 해도 흐르는 눈물, 그 모든 감정이 공감을 자아내며 내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마주하게 한다.


가사는 마음이고, 멜로디는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아무리 이쁘고 화려해도, 그 안의 내용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멜로디는 그 안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가사 속에 담긴 작가의 진심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는 멜로디의 흐름에서 벗어나, 가사에 집중해 보자.


우리가 사랑하는 노래들 속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진실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음악은 인간 감정의 진지한 표현이다. 음표와 음악의 구조는 마음의 언어를 전달한다.’ -요한 포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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