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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선생님

인생을 바꾸는 선생님들의 한 마디

by 승진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라고 하면 청소년 시기 내내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른, 그런 전형적인 모범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 고등학교 생활은 공부라는 바리케이드로부터 탈출하려는 몸부림의 시기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수능 따위로, 그것도 1년에 단 한 번뿐인 시험으로 내 인생이 결정된다는 교육부의 선언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적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지만, 계속해서 공부로부터 반항했다. 학원은 하도 많이 땡땡이를 쳐 학원 선생님의 얼굴은 못 본 지 몇 달이 되었고(그만큼 PC방 사장님의 얼굴은 선명해졌다), 독서실 형태의 공부학원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어머니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학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고, 때문에 학원 가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듣기 싫었다. 작은 잔소리는 큰 말다툼으로 번져, 문을 쾅 닫는 걸로 화를 풀곤 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을 때면, 주먹이나 발로 애꿎은 문을 걷어차기도 했다. 지금도 내 방문에는 그때의 흔적이 작은 구멍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가장 심한 반항의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고3 담임선생님께서 종례를 마치며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가 수능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거 잘 안다. 수능이 원망스럽겠지.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이 제도를 바꾸고 싶기도 할 거야. 그렇다면, 이 제도 안에서 먼저 성공하고, 바꿀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서 스스로 바꿔라. 실패한 뒤의 불평은 패배자의 변명에 불과하지만, 성공 뒤의 불평은 합리적인 개혁이니깐”.


그 말씀을 듣고 난 후, 나는 수능 제도에 대해 단지 불평만 하는 대신 수능을 잘 보고 수능 제도에 비판하고 바꾸기 위해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직전까지 수업 듣는 게 싫어서 수학 선생님께 수업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막바지인데 수업 하루쯤은 괜찮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19살의 피도 안 마른 청소년들의 계속되는 칭얼거림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는 몰라도, 선생님은 결국 수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너네처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능과 비슷한 시험을 쳤었어. 물론 그때는 이름이 수능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처음에는 ‘내가 이 무시무시한 시험을 과연 잘 볼 수 있을까?’ 하고 걱정만 했어. 근데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아무것도 안될 거 같은 거야. 그래서 생각을 완전히 바꿨지. ‘이딴 시험 내가 두 번은 못 친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내자.’ 그랬더니 시험을 잘 볼 수가 있더라고. 너희도 ‘에이 이번에 못하면 재수하면 되지, 한 번만 더 잘해보자’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기보단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시험을 쳤으면 좋겠다.”


그 말씀을 듣고 나도 생각을 바꿨다. 수능을 두 번 다시는 치기 싫었기에, 이번 한 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수능을 치자.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시험을 봤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진 않으리라.


이런 선생님들이 내 곁에 계셨기에 다행히 수능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 만약에 내 주위에 이런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불평불만만 하며 방황하던 나에게 목표를 만드는데 도와주며, 그 목표를 향해 혼자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셨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생님을 만난다. 짧은 만남일지라도, 가치관이 자리 잡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선생님들의 모습과 말씀은 깊은 영향을 미친다. 나도 그랬고, 나의 선생님들도 학창 시절에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내가 선생님이 되었을 때 만날 학생들 중에도 고3 때의 나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 나도 방황했었고, 어떻게 나의 선생님들과 함께 극복해 나갔는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의 선생님에게서 배웠던 삶의 지혜를 내 학생들에게도 전해주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스승은 영원한 영향력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스승은 자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을 결코 말할 수 없다’ -핸리 애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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