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채우기만을 학습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군인에게는 가끔 특별하게 한 주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주 또한 그랬다. 바로, 진지공사 주이기 때문이다.
진지공사란 부대가 국가를 보호하는 데 쓰이는 경계 시설물들을 보수하는 작업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건설장비가 없으니 젊은이의 노동력을 갈아 넣는 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2주 동안 40kg의 시멘트 포대를 들고 산 정상까지 오르며, 허리도 제대로 못 편 채 2 ~ 3시간 진지를 보수했다. 작업이 계속되면서 나중에는 계단을 오를 때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나고 점점 시려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임과 함께 우리 부대가 지키는 철책을 한 바퀴 순찰하던 중, 또다시 무릎이 시려 후임에게 칭얼대었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이제 순찰 이것도 못 하겠는데, 뭐 좋은 방법 없냐?" 그러자 후임이 제안했다. "제 친구가 스포츠 의학과인데, 그 친구에게 배운 마사지가 있습니다. 내일 한번 해드립니까?"
마사지를 내 인생에서 한 번밖에 안 받아보기도 했고, 후임한테 마사지 받는 것도 뭔가 민망해서 머리로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작업과 순찰을 버틸 대로 버틴 내 다리는 거절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이번만큼은 머리보다 다리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마사지를 받기 전, 스포츠 마사지는 처음이라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후임이 말했다. “아프시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 안 되고, 심호흡하셔야 합니다. 비명을 지르면 계속 아프지만, 심호흡하시면 점점 괜찮아지실 겁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오일 마사지와 같이 부드럽게 해주는 거일 줄 알았는데 (처음 받아본 마사지도 오일마사지였다) 경락마사지처럼 내 무릎을 꾹 누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파도 나름대로 버틸 만했지만, 무릎 사이 근육이나 발 쪽 마사지를 할 때는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비명이 나왔다.
후임은 계속해서 “비명 지르시지 말고 심호흡하셔야 점점 괜찮아지십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말은 마사지라고 하지만 그냥 감정 싣고 선임을 괴롭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속는 셈 치고 심호흡을 해 보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또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고. 놀랍게도 폭풍 속 배 안에서 명상하니 폭풍이 온 줄 전혀 몰랐다는 옛날이야기처럼, 점점 통증이 사라졌다. 마사지를 모두 마치고 나서 “사회 나가서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면 좋습니다. 그래야 안 다치고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후임은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통증이 사라졌던 게 궁금했던 나는 마사지를 받을 때 왜 심호흡을 하면 괜찮아지는지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전신에 힘을 뺀 상태에서 통증이 발생하면 우리 몸은 무의식적으로 근육에 힘을 주게 되는데, 심호흡을 통해 근육의 긴장을 풀면 통증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픔을 거부하게 되면 그 아픔은 가중되어서 찾아오고, 오히려 아픔을 수용하면 아픔이 덜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휴식이 부족하면 통증이라는 형태로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런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일하다 보면, 누적된 피로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해 결국 몸이 스스로 '강제 휴식 모드'로 들어간다. 현대인들은 쉬지 않고 일하는 방법만 배워왔을 뿐, 쉬는 방법은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피로를 피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잃어버리는 번아웃이 일어나거나, 피로를 버티다 못해 과로로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힘듦을 인정하고, 휴식을 취해주자. 웨인 다이어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당신이 즐기는 것을 생각하고, 쉬는 데 바치며, 패배주의적 방식과 의무감을 짊어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몸의 피로에 밀려 마음의 피로는 소외당하기 십상이다. 또는 너무 열심히 일해서 피로를 가볍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휴식이 있어야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비우지 않은 채로 채우면 넘친다.
비워야지, 채울 수 있다.
‘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같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헨리 포드-
지난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