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넘어선 진정한 우정
군 생활 중 다양한 간부들, 선임들, 후임들을 만났다.
다행히 내가 모난 성격은 아니라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전역 후에도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친구인가?"라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진 못할 거 같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도 선후임이라는 계급 관계 속에서 '후임에게는 엄격하게', '선임에게는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편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완전히는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게 수직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군대에서 설날을 보내게 되었다. 명절이고 하니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 19로 인해 조기 전역이 확정되어 휴가 없이 전역 날까지 군대에 있었어야 했다.
전화를 걸기 전, 100일 넘게 남은 군 생활 동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고 싶은 게 사회에 있다면 혹시 택배로 부쳐줄 수 있는지도 전화로 물어봤어야 하니깐.
음식이나 간식?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 소위 ‘막입’이었기 때문에 밥도 항상 잘 먹었고 간식은 PX에서도 많이 팔았다. 놀이나 공부? 군대에서 놀거리를 가져오는 건 눈치가 조금 보였고 군대 그 자체로도 힘든데 군대에서까지 공부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그저 나와 동등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의 선임, 후임과 같은 어떠한 역할에서 벗어나 그저 황승진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나랑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선/후임 관계는 이제 피곤했다.
대화를 하면서 가치관과 생각이 비슷했던 선임이 있었다. 그의 삶을 더 탐구하고 싶었고, 그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나 '까'같은 수직적 말투는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나는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의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도서관에 갈 때 몰래 따라갔다. 맞을 각오로 이젠 전역도 하겠다, 나이도 같은데 말 편하게 하고 싶다고 말해 우리는 '다'나 '까' 어투를 제거하고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지금까지의 삶, 전역하고의 미래 계획, 전역이 다가옴에 따라 감정은 어떤지 같은 깊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는 진정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사전에서는 '친구'를 '오랫동안 가깝게 사귀어 온 사람, 특히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 사이에서 쓰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나이의 동등함이 친구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대부분 동갑내기를 친구라 부른다. 태어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학교라는 사회에는 동갑내기 밖에 없었고, 또 한국어의 특성상 나이에 따라 말하는 문화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이의 숫자가 '가까운' 사람들을 나의 친구라고 섣불리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이는 같지만 나보다 먼저 입사해 사수님이 된 사람을 친구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나는 친구의 ‘가까움’이란 내가 어떤 위치, 역할과 같은 관계에서 벗어나 그저 내가 나인채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가식 없이 내 모든 마음을 표현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나에게 있어 진정한 ‘친구’ 아닐까.
사람을 아무리 많이 사귀어도 모두 친구가 되지 않는다.
옆에 있을 때 마치 또 다른 나와 있는 것 같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친구란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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