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저 많이 보고 익히는 수 밖에는 없다는 우격다짐을 또 할 수밖에
시니피앙의 수수께끼
이쯤해서 기분전환좀 하자. 수수께끼 문제 한번 풀어봅시다.
“남자에게는 있고 여자에게는 없으며, 뱀에겐 있고 개구리에겐 없고, 삼촌에겐 있고 형에겐 없고, 아빠에겐 없고 엄마에게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여러분은 ‘남자에겐 있고, 여자에겐 없다’에서 쉽게 답을 예측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개구리에겐 없고 뱀에겐 있는 것’이라고 했을 때부터 어째 조짐이 이상하다 싶더니 급기야 ‘엄마에겐 있고 아빠에겐 없는 것’이라는 마지막 대목에 와서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포기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분명 처음 시작은 남자에겐 있고 여자에겐 없다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와서는 ‘아버지에겐 있는데 엄마에겐 있다’고 하니, 첫 번째 문장을 뒤집을만한 어떤 대단한 것이 엄마들에겐 있다는 말인가? 어떤 분들은 어쩌면 그것이 이미 ‘받침 미음’이라는 것을 알고 내심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말들이 가리키고 있는 개념(기의 記意, 시니피에 signifié)이 아니라 말 자체의 형식(기표 記表, 시니피앙significant)속에서 그 있고 없고의 관계를 찾았기 때문이다. - 남자, 여자, 뱀, 개구리, 삼촌, 형, 아빠, 엄마는 모두가 기호입니다. 다른 이들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것은 이처럼 기호의 내적인 형식을 보지 않고,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만을 찾아서 달려가려 하는 습관 때문이지.
첨언하자면 나는 기호학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닥 관심 없다. 단지 여기서 지시'하는' 것과 지시'되는' 것의 차이만을 짚어보고 싶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기호'라는것은 그림그리는 화가의 붓터치가 될 수도. 시인이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연과 연 사이의 빈 칸일 수도, 혹은 마지막 단어의 발음이나 모양새일수도 있다. 그렇게 화가와 시인은 작법. 언어를 기호로 사용하여 조합 배치하여 의미를 만들고, 우리 조경가와 건축가는 형태구성을 기호로 사용하여 의미를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일은 상징 그자체가 아니라 상징을 드러나게 하는 기호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 달이 갖는 의미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달 그 자체가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모양이지. 그것이 엄지냐 검지냐, 펼쳐진 손바닥이냐 주먹이냐에 따라 달이 말하는 바도 달라진다. 오히여 달 자체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우습게도 우리는 언제나 달만 쳐다보고 있다. 그렇기에 수수께끼를 쉽게 풀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장님이 후딱 휘갈겨 그리신 디자인에서 기둥은 말하지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기둥과 바닥과 창문이 결합되는, 지시되는 관계들을 치밀하게 추리해야 한다. 달을 바라보는 목을 돌려 손가락으로 관심을 돌리는 노력이 필요한 거란 이야기.
하여 이제부터 여러분과 함께 다음의 다섯가지를 함께 들여다 보고자 한다.
김정희의 세한도 - 유승종
정영선의 선유도공원 - 유승종
장익준의 똥파리 - 전광준
르꼴뷔지에의 빌리사보아 - 유승종
윤동주의 서시 - 이어령
문학. 미술. 영화. 조경. 건축의 분야에서 각각 한개씩의 작품들을 가져왔다. 이제부터 각각의 작품이 내포하는 상징이나 작가가 처한 시대적배경과도 무관하게, 형태구성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동안 신화의 이면에 감추인 치밀한, 혹은 소박한 구성의 비밀이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함께 가는 길에서 사유의 재미 역시 느끼시면 음. 좋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