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해킹하기
2007년 1월, 이제 곧 제대다. 군대에서 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누군가에게는 인내라는 교훈을 배운 시기라지만, 난 아니다. 2년이라는 시간은 730일 또는 8760시간, 뭔가를 시작하면 그 시간에는 끝낼 수 있을만큼 어마어마 기간이다. 취미 생활을 하더라도 프로페셔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수준까지는 오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이 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가장 만만한 책을 많이 읽기로 결심 하였다. 책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아무 곳에서나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일과시간 이후를 활용할 수 있었다.
2년이라는 그 기간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약 100여권 정도의 독서를 한 것 같다. 거의 한달에 한번씩은 몇 권씩 부모님께 읽고 싶은 책을 부탁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책값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권당 만원씩만 해도 백만원이니 군대에서 먹고자고 잘 지내는데 부모님께 이런 것까지 부탁드리는게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습관이 되어있지 않아서인지 금방 잠이 오곤 했다. 하지만 점점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내가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싶어 좋은 구절이 있을 때마다 조그마한 수첩에 빼곡히 적고, 시간이 날때 마다 한번씩 꺼내보곤 했었다. 참고로, 대부분은 자기 계발서나 경제 서적이었다.
어느 정도의 책을 읽어서 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를 하고 무엇을 해야 내 인생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끔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나는 서울 4년제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을 하고 있었고, 2년 재학 후, 휴학, 그 뒤 SK C&C에서 아르바이트를 1년하고 군입대를 한 상태였다. 왠지 제대해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나이 또래에는 뭔가 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앞서 있었다. 지금은 평범한 게 가장 힘든 것임을 안다. 하지만 그때 당시, 20대로써 뭔가 큰 목표를 두고 꾸준히 전진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많은 자기 계발 서적에서도 언급되었었지만, 외국어, 무엇보다 영어가 필수인 듯 보였다. 그래서 TV에 많은 사람이 간다는 어학 연수를 한번 해보기로 하고, 염치 불구하고 아버님께 어학 연수를 가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 당시 아버님은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계셨고 무엇보다 영어의 중요성을 아셨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군대에서 2년 보낸 자식이 불쌍해서인지 흔쾌히 나에게 투자를 해 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다이아몬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수저나 은수저 정도는 되는 행운아였나 보다.
아무튼, 말년 휴가로 잠시 나오게 되었을때, 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외 여행 한번 다녀오지도 않고 주위에 어학 연수 간 친구들도 없는 터라 물어볼때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과 삼성역을 들렸다. 당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강남에 어학원들이 몰려있다고 해서 그냥 무작정 몇군데를 수첩에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어학원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머리 짧고 까무잡잡한 누가봐도 군인일 것 같은 사람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해서 인지 상담원들이 거리를 두고 쳐다 보았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영국, 필리핀 그리고 미국이 그 후보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영국은 너무 비쌌고, 나머지 둘중 고심한 끝에 이왕 영어배우는 거 미국으로 가자라고 결정을 내렸다. A.M.E.R.I.C.A로 가기 위해서는 학생 비자를 받아야 했었는데, 영어도 잘 못하고 외국사람 한번 만나보지 못한 내가 하기에는 인터뷰부터 꽤 힘들었다. 손짓 발짓하며 바보같이 웃고만 있었던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운이 좋게도 F1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모든 수속을 다 마치고 다시 군대에 복귀했다, 이제 제대 날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고 그때 부터는 어학 연수에 관한 책을 하나사서 미국가면 무엇을 해야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살아남는 방법을 공부했다.
절대로 올지 않을 것 같던, 제대 날짜가 다가왔고, 2주후 바로 미국길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보스턴 새벽녘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비가 주륵주륵오고 안개가 살짝 낀 어두운 밤, 픽업 나온 아저씨를 따라 어학원 봉고차에 몸을 싣고 기숙사로 가던 그날, 영화에서만 보면 나오는 집들이 해외 처음 나온 촌놈인 나는 너무 신기했다. 이제 미국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짧은 어학 연수 기간 영어 기초라도 쌓자라는 것이 목표였다. 기숙사에 도착 후, 기숙사 학생들은 다 자는 시간. 짐 정리를 하고 짧다막한 침대에 누웠다. 부모님께 도착했다고 연락은 드려야 할 듯 한데....
보스턴 어학연수겸 기숙사
기숙사 책상
한국에 전화는 어떻게 해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