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해킹하기
어학 연수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도착한 첫날은 주말이었고, 수업은 월요일부터 시작이니 주변을 둘러봐야겠다라고 마음 먹고 산책하던 중, 맛있는 커피 냄새가 나 스타벅스라는 곳에 들어갔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스타벅스는 막 한국에 상륙한 상태였고, 제대 후 바로 미국으로 온 나는 스타벅스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상태였다. 또 서울 촌놈이었던 나는 익숙한 커피라고는 봉지커피뿐이었다. 이 사실이 지금 시대에는 웃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커피의 종류를 몰랐다.
아무튼, 매장에 들어간 나는 메뉴판을 보고 멘붕에 빠지게 된다. “Americano, Latte, Mocha ...” 이게 뭐지? 커피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었나? 어쨌거나 라테는 어딘가에서 들어봤으니 그것을 마시기로 마음 먹고 주문을 하는데, “라떼 플리즈?” 그런데, 점원이 막 뭘 물어본다. 뭐라고 나에게 물어는 보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은 나는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결국 엄청 큰 사이즈의 라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우와 역시 미국은 뭐든 크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이즈가 뭐냐고 물어봤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못 알아들은 나는 영알못(영어를 알지 못하는 놈)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3개월이 지나고, 커피 정도는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고, 점점 어학 연수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어학 연수라는 것이 영어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끼리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 늘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매일하는 똑같은 대화 말고는 향상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된 것이다. 미국으로 비싼 돈을 내고 온 나에게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조바심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수 과정 중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학급이 있어, 변경 신청을 한 후,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미국 대학교 입학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보스턴에는 하버드, MIT, Boston University 그리고 Boston College등의 대학교가 많았고, 여름에는 서머스쿨이 있어서 누구든지 적은 학비로 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어, 미국 대학교 교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등의 경험을 할 수 있다. 나 또한 어학 연수의 오전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하버드에서 영어 수업을 더 듣게 되었다.
여기서 미국의 대학교에 대해 잠깐 알아보고 가겠다. 미국에는 주립, 공립 그리고 사립대학교가 있고, 또한 주마다 2년제 대학이 존재한다. 그리고 2년제 대학를 재학 후 어느 정도의 학점과 교과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같은 주의 4년제 주립이나 공립 대학교로 편입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예를들어 캘리포니아에서는"If you are considering transferring to a CSU, UC, or other four-year institution after community college, start working closely with your community college counselor to create plan as soon as you are admitted.
The California Community Colleges have transfer agreements with both CSU and UC systems which make it easier for students to transfer from the community college into these four-year colleges and universities." - https://www.calcareercenter.org/Home/Content?contentID=179
일단 SAT 점수가 없었고, 볼 생각도 없던 나는 비교적 입학이 쉬운 2년제 대학교를 목표로 잡고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심히 수능보고 운좋게 입학한 한국에 있는 대학을 휴학 한 상태이기 때문에, 영어나 조금 더 확실히 하자는 생각에 2년제 대학교를 한 두학기 다니다가 복학하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 어느 주를 가야 할까? 그러던 중 그때 당시 미국 드라마인 The O.C를 교재 삼아 영어 공부 하던 나는, 엘에이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도시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실 엘에이가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사실도 이때 알았고, 로스엔젤레스가 엘에이랑 같은 도시라는 점도 이때 알게 되었다. 그럼 캘리포니아를 가기로 결정은 했고 그러면 캘리포니아에 어떤 대학교를 가야 할까? 아무 정보도 없던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2년제 대학교는 어디일까?라는 생각하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 결과 그 대학은 Fullerton College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Fullerton College is a community college in Fullerton, California. The college is one of 112 in the California Community Colleges System and belongs to the North Orange County Community College District. Established in 1913, it is the oldest community college in continuous operation in California. - https://en.wikipedia.org/wiki/Fullerton_College
일단 가장 오래된 2년제 대학이니 가장 좋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 지 정리하기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몇가지 준비와 함께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에서는 수업에 따라가기 위해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5학점)라는 코스를 들어야 했고, 캘리포니아 주민이 아닌 나는 16학점 이상을 들어야 학기 등록이 가능했다. 상대적으로 쉬운 수학과 물리학을 들었고 가장 많은 집중은 ESL에 있었다. 확실히 ESL는 대학교에서 하는 수업이다보니 수준이 어학연수 보다는 조금 더 높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내가 2년제 대학교에 온 목표는 어학 연수의 연장선이었고, 한 학기 후 한국의 대학교로 복학할 생각이었다. 학기 중 미국 친구들도 많이 만들게 되고 여러 문화도 접하기 시작할 무렵, 중간 고사에 대한 성적이 나왔다. 어라?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왔는데? 잘하면 한국에서는 꿈에 그리던 UCLA나 UC San diego도 노려볼 만 하겠는데? 이때부터 나는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한국에 재학 중이던 대학교로 돌아가지 않으면 자퇴가 처리가 되어버리고, 편입을 하겠다고 결정을 해버리면 배수진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인생 뭐 있어? 그냥 한번 도전해 보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부에 미친듯이 몰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편입 신청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참고로 편입 신청은 자기가 가고 싶은 여러 곳에 신청비만 내면 중복 신청이 가능하다. 나는 UC San diego, UCLA, UC Irvine를 포함 UC Berkeley에도 지원하였었다. 사실 UC Berkeley는 커트라인이 꽤 높은 관계로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UC Berkeley가 동부에 있는 Berklee와 다르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되었다.
결과가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했고, 합격의 소식은 UC Irvine에서 부터 오기 시작했고 UCLA가 그 다음 Berkeley, 마지막으로 San diego 순으로 들려왔다. 하늘이 도와 주셨는지, 생각지도 못한 Berkeley에 합격하게 되어 편입학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눈물 섞인 “그동안 수고했다"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나는 캘리포니아 북부 도시 버클리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