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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Oct 27. 2017

외국인, 강제출국, 선고유예

외국인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중국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구로구와 금천구를 관할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 남부지법 국선변호인으로서 종종 외국인 사건을 맡아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은 '보이스피싱' 사건이다. 안타까운 점은 국선변호를 받는 대부분의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달책'이라는 것이다. 상책들은 QQ라는 메신저(카카오톡과 유사한 중국버전 메신저)를 통하여 콜책과 전달책에게 임무를 하달한다. 따라서 상책들은 대부분 체포되지 않고, 전달책들만 체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전달책들은 보이스피싱 사기로 조직이 획득하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전달하고, 수십만원의 돈을 받다가 체포가 된다. 범행가담정도와 범죄수익향유가 상책들 보다 확연히 적지만 수면에 드러나는 전달책들은 법원의 재판에 의해서 죄의 판단을 받는다. 불법적인 일인지 모르고 하였다고 항변하지만 그들에게는 대부분 중형이 선고된다.


강제출국



출입국관리법

제46조(강제퇴거의 대상자) ① 지방출입국ㆍ외국인관서의 장은 이 장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을 대한민국 밖으로 강제퇴거시킬 수 있다

13.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사람


출입국관리법 제46조제1항제13호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외국인은 강제퇴거의 대상이 된다. 즉, 자신의 죗값에 대한 형사처벌을 다 받은 이후에도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 보이스피싱 범죄와 같은 경우에는 강제출국 이후에 영구히 입국금지가 되기도 한다.


사기



최근에 맡았던 사건은 보이스피싱이 아닌 단순 사기였다. 물론 보이스피싱도 큰 범주에서는 사기긴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생각하는 채권채무관계에서의 사기였다.


영장실질심사때부터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중국동포는 ‘내가 상대방을 속여서 돈을 빌린 것은 맞고, 언제까지 갚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몇 차례 변제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핸드폰을 없애서 회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돈을 꼭 줄 것이기 때문에 사기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사기를 당했다.’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상대방을 속여서 돈을 빌렸고, 갚기로 하였지만 갚지 않고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 사기다. 그리고 당신이 사기를 당한 것과 당신이 사기를 친 것은 별개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중국동포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였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이 되었고, 몇 차례 접견을 거치면서 자기의 행위가 사기였던 사실과 자신이 사기를 당한 것과 사기를 친 것은 별개라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액수가 크기 때문에 전혀 변제가 되지 않는다면 실형이 나올 것이다. 설령 집행유예가 나오더라도 출입국 관리법에 따라서 강제출국을 당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엄청 울기 시작하였다.


‘변호사님, 저 16년 전에 한국에 왔고,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였어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하였다. 사실 16년간 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전과가 없었고, 피고인이 다른 중국동포에게 투자사기를 당해서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피고인 남편과 통화를 하였는데 어떻게든 계속 한국에서 같이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일부라도 변제를 하고, 추후 변제를 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보라고 말씀드렸다.


피고인의 딸과 남편이 어렵게 돈을 모아서 피해금액의 1/5 가량을 변제하고, 추후 변제하는 것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보았다. 피고인과 가족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 한 상황에서 그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고액의 사기사건에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기도 쉽지 않지만, 설령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피고인은 강제출국을 당하는 상황에서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떠오른 것이 바로 ‘선고유예’였다.


선고유예



형법 제59조(선고유예의 요건) ①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에는 그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 단,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자에 대하여는 예외로 한다.


형법에서는 ‘선고유예’에 대하여 규정을 하고 있다. 선고유예란 범행이 경미한 범인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이다. 피고인에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피고인이 원하는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고유예뿐이었기에, 재판에서 구구절절히 피고인의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피고인에게 형의 선고를 유예해달라고 부탁드렸었다.

하지만 검사가 2년 구형을 한 상황에서 선고유예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판결 선고일이 다가왔고, 다른 재판 때문에 남부지방법원에 갔다가 위 사건의 재판의 결과를 듣게 되었다.



선고유예였다.

민사에서 청구하는 금액이 모두 인용되는 순간 혹은 형사에서 간혹 무죄를 받는 순간이 변호사로서 정말 기쁘긴 했는데, 이 건 선고유예는 그것과 다른 묘한 보람이 느껴졌다.


물론 그 이후,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사무실로 전화해서 나와 과장님을 정말로 괴롭혔었던 피고인이나 피고인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는 듣지 못했다. 그래도 변호사로서 1) 피고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점, 2) 피해자의 피해회복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점, 3) 피고인의 가정공동체를 지켜주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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