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삼청동에 간다

by 이승훈
가파른 삼청동 골목길

이제는 제법 쌀쌀한 가을 저녁의 바람마저 삼청동의 가파른 골목길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오른 골목의 끝자락에서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올 때마다 내게 땀 한 바가지를 선사하는 곳. 그럼에도 매번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촌로, 그 초입 골목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바로 삼청동으로 가는 초입이 나왔다. 골목을 돌았을 뿐인데, 제법 분위기가 달라졌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가게들 사이에서 홀로 한옥의 모습을 지키는 몇몇 가게들이 보였다. 마치 이곳이 삼청동으로 가는 길이 맞으니 계속해서 가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토요일 6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때 임대료 문제로 인해 지금의 이태원처럼 공실률이 높아 관광객이라고는 외국인 관광객밖에 없던 때도 있었다. 최근 블루보틀이나, 한옥을 개량한 색다른 분위기의 카페들이 들어서며 다시금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한때 좋아했던 익선동

워낙 한옥을 좋아하다 보니, 지금도 종로 일대를 내 집 드나들 듯 돌아다니고는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익선동에 발을 들였다. 물론 그 당시의 익선동은 지금처럼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과 어깨가 부딪히지는 않을까 조심하지 않아도 됐고, 수많은 감각적인 카페들 사이에서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익선동은 참 조용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익선동을 마지막으로 간 건 이번 봄이었다. 꽤 괜찮은 식당이 있다는 얘기에 퇴근 후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내 기억과는 180도 다른 익선동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좁은 골목에서 어깨를 부딪히는 것은 다반사. 간혹 주택처럼 보였던 한옥의 자리에는 빼곡히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고, 식당의 웨이팅은 기본 1시간이 필수였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익선동 방문기였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마주하는 한적한 삼청동 골목의 매력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삼청동이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면 어떡하지."

"내가 좋아하는 고즈넉한 카페의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면 어떡할까."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고,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삼청동은 내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충분히 매력 있는 곳이었다. 조용한 골목을 걷고, 힘겹게 오른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복궁과 야경. 저 멀리 보이는 북악산은 모든 복잡한 생각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삼청동 골목길을 올랐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과 현대적이다 못해 세련된 건물이 나란히 서있는 곳. 그곳의 야경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북악산에는 성곽길이 조명을 받아 줄을 긋고 있었고, 불 꺼진 경복궁은 어둠 속에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 야경이 삼청동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삼청동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한 카페

삼청동 거리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이 카페는 내가 정말 애정 하는 카페 중 하나다. 커피맛이 특별하다거나 다른 카페처럼 루프탑이 있어 삼청동의 야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유리로 된 2층 창을 통해 색다른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과는 다르게 새로운 시각의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유리창이 답답하다면 옆에 자그맣게 마련되어있는 평상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날씨가 좋다면, 평상에서 드물게 뜬 별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24시간 개방된 청와대 앞길

매번 내려가는 익숙한 인사동길을 포기하고, 청와대앞 길을 택했다. 이번 정부 들어 24시간 개방되어 야간에도 청와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뿐인가. 사진 촬영도 가능해, 언제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감히 꼭 한 번쯤 가봤으면 하는 길이다. 단순히 청와대를 보기 위함은 아니다. 조선의 왕이 머물렀던 경복궁과 오늘날의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 사이를 걷는 그 묘한 기분은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기분일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부득이하게 청와대 앞길 통행이 제한된다면, 진작 가보지 않은 자신을 탓할지도 모를 일이다.


광화문, 그 아름다운 곳

경복궁을 거쳐 광화문을 통해 빠져나오니 그제야 광화문의 저녁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보아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항상 시위대로 가득하던 광화문 광장이 오늘은 뮤직 페스티벌로 인파가 가득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선 시위를, 한쪽에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거닐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드니 괜스레 마음 한편이 뜨거워진다.


계획에 없던 삼청동 나들이

삼청동을 가보지 않은 지인을 꼭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방문한 날이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내게만 좋은 곳이었나' 하는 의문도 잠시, 광화문을 보며 지인이 했던 말이 그 의문과 쌓였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외국인들이 왜 이곳을 오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거든? 근데 왜 오는지 알겠다. 우리나라 좋네!"


아직 내 주변에 우리나라의 매력을 모르는 지인들이 참 많다. 해외를 많이 가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곳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아니 오히려 훨씬 좋은 곳이 많다. 이번 주말은 북적북적한 번화가 보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매력이 있는 삼청동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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