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이 주는 그 안락함
얼마만의 성수동이더라
성수동에 있는 맛집에 가자는 지인의 말에 오래된 기억을 더듬더듬 되짚었다.
'성수동' 그래 분명 언젠가는 갔을 것이다. 그만큼 익숙하고 많이 듣던 지명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써도 성수동에서의 어떠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서울 이곳저곳의 골목을 이리저리 꽤나 누볐다고 생각했는데, 성수동을 추억할 단 하나의 기억도 없다니. 그 길로 망설임 없이 약속을 잡았다.
성수동 블루보틀
성수역을 향하던 중 뚝섬에 내려 걸어가는 게 어떻겠냐는 지인의 말에 급하게 뚝섬역에 내렸다. 별다른 기대 없이 내린 뚝섬역에서 뜻밖에 유명한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블루보틀' 말로만 듣던 성수동 블루보틀이 여기 있었구나. 이미 삼청동에서 블루보틀의 커피맛을 본터라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붉은색 벽돌이 주는 블루보틀의 감성은 아직까지도 진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아마 그것이 성수동의 매력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블루보틀을 뒤로하고 성수동의 먹을거리가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수동 그 초입
높디높은 건물 숲 사이를 가로질러 들어간 곳에는 꽤나 익숙한 가게들이 조목조목 늘어서있었다. 옛날 감성 물씬 나는 자전거 가게와 그 앞에서 바람 빠진 자전거에 바람을 넣고 있는 아저씨. 세련된 간판들 사이에서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투박하고 낡은 고깃집 간판. 보기만 해도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성수동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걸어가다 곧 우리가 가고자 했던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옛 느낌이 나는 건물들 사이에서 맞은편 가게와 함께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지어진 가게였다.
붉은 벽돌이 주는 안락함
기대와는 달리 조금은 실망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기 전 성수동을 좀 걷기로 했다. 소화를 시키는 목적도 있었지만, 어느 곳이나 그곳의 골목길을 걸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유도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곧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바래진 벽돌과 함께 조금은 더 붉은색감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 북적대지 않는 카페와 소품샵, 공방. 조용한 거리 한 곳에 자리 잡은 공원까지. 한글 간판만 없다면 유럽 작은 도시라고 해도 될 만큼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소품샵에 잘 들어가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날만큼은 거의 모든 소품샵에 들어갔던 것 같다. 짧다면 짧은 골목 끝에는 한 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꽤나 큰 공원이 있었다. 서울숲이었다.
이제 막 심어진 공원의 작은 나무
평일 낮임에도 공원 안에는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산책을 나온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 바쁜 일과 중 잠시 숨을 돌리러 온 직장인. 대학 과제를 하러 온 대학생들. 모두 각자의 이유로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일 낮에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 행복했다.
로봇이 내려주는 커피란
서울숲 산책을 마치고 계획했던 카페로 향했다.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는 카페에 들어가니, 내부는 더 화려했다. 한쪽 벽면을 거울로 채우고, 다른 쪽 벽면을 스크린으로 채워 주기적으로 다른 영상이 틀어졌다. 한 번은 푸르른 바닷속, 한 번은 저녁노을을 연상케 하는 영상에 더해 다른 영상이 차례로 바뀌면서 카페 분위기를 바꿨다.
커피를 주문하러 가니 이내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문이 들어가니 곧 로봇이 움직이며 우리가 주문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신기함에 이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내리는 것도 신기하지만, 커피맛까지 좋으니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과 함께 씁쓸한 생각도 함께 들었다. 커피까지 로봇이 내리는 시대란.
성수연방
이대로 성수동을 나가기 아쉬워, 성수연방으로 향했다. 카페부터, 서점, 식당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복합적으로 되어있는 곳이었다. 건물의 크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띵굴스토어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있는 공간이어서 그런지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았다. 특히, 모든 가게들이 감각적으로 인테리어를 해둔 탓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곳이었다. 평일임에도 사람이 좀 있는 편이었으니, 주말에는 이렇게 여유롭게 구경하기에는 힘들겠지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무 많이 걸은 탓에 몸은 피곤했지만 한 가지 확실히 얻은 것은 성수동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었다.
붉은 벽돌이 주는 안락함이 있는 동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