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다운 느낌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집과 가까우면서도 프로방스를 가본 것은 손에 꼽는다. 왜인지 헤이리 마을은 자주 가도 프로방스는 좀처럼 가지 않게 되는 곳이었다. 그곳이 별로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헤이리 마을보다 예쁜 마을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마음먹고 본다면 30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프로방스를 굳이 찾아가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원래의 계획은 영화 뷰티인사이드에 나온 인천의 한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에 인천으로 향한다는 것은 평소의 두배 가까이 되는 시간을 온전히 도로에 쏟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가까운 파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프로방스로 향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방스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줬다.
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재즈와 함께 각양각색의 빛이 눈을 밝혔다. 계획 없이 방문한 프로방스에서 운 좋게도 빛 축제를 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적당히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이곳저곳 둘러보기에도 적당한 날씨였고, 여기저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해지니 더욱 좋았다.
빛 축제가 한창이던 프로방스
언제나처럼 붐빌 것이라 생각했던 프로방스는 의외로 한산했다. 곳곳에서 사람을 찾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였다. 마늘빵 구매 고객 대기줄이란 팻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가했던 어느 빵집은 오늘이 정말 토요일 오후 6시가 맞나 의심해볼 정도였다. 덕분에 조용히 마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마을을 가득 메울 정도로 예쁘게 설치된 조명과 함께 잘 꾸며놓은 소품샵과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크리스마스 기분에 젖어있었다. 그와 동시에 드는 한 생각.
'아, 얼마만의 크리스마스인가!'
서울에서 크리스마스를 느끼기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달력의 날짜만 넘어가고 있을 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늘 똑같은 출근길 지하철과 익숙한 동네만을 걷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연말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하고 있던 내게 프로방스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선물을 건넸다. 그만큼 지금의 프로방스는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한 아이가 프로방스 광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목소리로 "산타할아버지 어디 계세요?"라고 소리칠 정도니 말이다.
프로방스 안에 있던 다른 작은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주차장 쪽으로 올라왔다. 미리 봐 둔 카페에 가기 위해서였다. 언덕 위에 넓은 창을 가진 카페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구경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밖에서 본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 몇 채가 더 있었고, 카페 한쪽에는 작은 연못이, 한쪽에는 한껏 조명을 올려놓은 나무가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참을 구경하다 주문을 하기 위해 카페로 들어갔다.
아메리카노와 치즈케이크가 맛있었던 곳
밥을 먹고 온 터라 아메리카노 두 잔과 함께 치즈케이크를 시켰다. 벽난로 있는 자리가 내심 탐났지만, 단체석인 것 같아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용한 카페에서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치즈케이크를 먹었을 때 알 수 없는 행복감이 입안에 맴돌았다.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던 적이 있었나?'
사실 난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빵집을 운영하는 삼촌이 생일날 케이크를 들고 와도 잘 먹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곳의 케이크는 맛있었다. 플레인의 깔끔함과 치즈의 고소함이 한껏 어우러져 풍미가 좋았다. 커피 역시 맛이 괜찮았다. 3종류의 원두를 고를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커피의 맛이나 향 역시 일품이었다. 정말 커피와 케이크의 맛이 좋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은 못하겠다. 커피는 기분의 음료라고 하지 않던가. 아마 오늘의 기분 좋은 우연이 쌓이고 쌓여,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에서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순간이 행복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뜻밖의 선물을 준 프로방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