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일부가 된 나무

월넛 책잡이, 그리고 책갈피

by 이승훈
용도가 뭐지?

이 사진만 보면 도통 어디에 쓰는지 모를 물건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한 가지 정도는 감이 온다. 하나는 분명 책갈피일 것이다. 자그마한 구멍에 가죽끈을 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질 책갈피. 그렇다면 저건 도대체 무엇인가. 요상한 모양의 나무에 요상한 구멍.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어디에 쓰는 걸까. 아마 두 번째 사진을 보면 한 번에 느낌이 올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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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잡이

책잡이. 한손 책잡이라고도 불리는 이 물건을 처음 본 것은 인사동의 한 가구 전시회에서였다.

한 가구학교의 졸업생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곳. 우연치 않게 본 그곳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했다. 공방을 다니며 가구를 만드는 탓이었을까. 몇 개 되지 않는 가구를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며 깊이 빠져있었다.

"가구를 만드시나봐요?"

유심히 본 탓일까. 이 전시회의 담당자 같은 사람이 내게 와 가구를 만드느냐 물었다. 무어라 대답해야할까 망설이다 이내 겸연쩍게 대답했다.

"그냥 조금요."

그리고 그 와중에 보인 자그마한 책잡이. 월넛으로 만들어진 작은 놈이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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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에 오자마자 선생님께 자투리 월넛나무를 조금 얻어냈다. 월넛. 호두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고급가구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나무다. 일반 소나무 원목과 비교해도 그 값이 훌쩍 비싼 나무. 하지만 그만큼 월넛만이 주는 고급스러움과 매력은 한 번 맛 본 사람이라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리라.


다행히 며칠 전 월넛도마 클래스가 진행됐던 터라, 자투리 나무가 꽤나 있었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작업대로 한움큼 월넛을 가져왔다. 나무 위에 스케치를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의 평균 엄지손가락 사이즈를 바탕으로 구멍을 뚫고, 가장 중요한 라인을 따기 시작한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밴드쏘에서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 모양을 따라나간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가 움푹 파여, 원하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을 뿐더러, 예상보다 더 많은 사포질을 해야하기에, 눈도 깜빡꺼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완성된 책잡이에 사포질까지 해주니 매끈하니 느낌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나무에 오일을 발라주었다. 월넛만의 고급스러운 색이 그제야 위로 올라온다. 오일이 마르는 동안 이참에 책갈피도 만들어보자 생각하고는 다시 작업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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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네


책갈피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저 나무를 얇게 자르고, 사포질과 함께 오일을 발라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각인까지 넣어주기로 한다. 마지막에 진행된 각인 작업. 그저 내 이름이나 새길까 하다 마음을 고쳐먹고 좋아하는 글귀를 새겨넣는다. 언제 보아도 슬픈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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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일부가 되다


오늘, 그저 버려질 운명이었던 한 나무가 나의 책의 일부가 되었다.